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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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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ug 24. 2019

좌뇌의 일탈

나는 여행이 좋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된 일상에서 여행은 달콤한 초콜릿 같다고나 할까. 내 안의 일탈 에너지가 마구 샘솟는다.
  
 금요일 아침 출근길. 꽉 막힌 도로를 만나면 나의 좌뇌는 그대로 유턴해서 인천 앞바다로 떠나자고 유혹한다.

 ‘청처럼 한 가을 바다를 거닐며 뽀얗게 부서지는 파도 구경은 어때? 근처 아무 데 들어가서 펼쳐진 바다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 회 한 점. 카. 상상만으로도 죽이지?’
  
 동화 속 백설 공주에게 탐스러운 독사과를 전하는 마녀의 유혹이 이런 걸까? 마음이 산사태가 난 듯 무너지고, 목마른 강아지 마냥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이대로 유턴을 하려는 찰 나 우뇌가 나선다. 무단결근 후 벌어질 사태들을 3D 입체 영상으로 보여준다. 돌비 서라운드는 보너스다. 다음 주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소장님의 호출과 무한 갈굼, 몇 번의 반려가 그려지는 경위서, 바닥으로 치 닺는 인사고과, 동료들의 쑥덕거림. 눈앞에 유턴 표시가 보일 때마다 초점이 흔들린다. 마치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골라야 하는 순간처럼 갈등한다. 나의 손은 점점 힘이 들어간다. 애꿎은 운전대의 목만 조인다. 드디어 마지막 유턴 길. 유턴의 오른손과 직진의 왼손이 사투를 벌인다. 오른발은 액셀과 브레이크 사이에서 탱고를 춘다. ‘가야 해! 아니 말아야 해!’ 손에 땀이 고인다. 팔에 쥐가 날 지경이다. 찰나의 순간 결국 우뇌가 이긴다. 조금 전 사투를 벌인 손과 발이 맞는지 평온히 회사로 나를 인도한다. ‘휴….’ 하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회사에 도착하여 슬쩍 컴퓨터 검색창에 ‘인천 앞바다’를 친다. 푹신한 털 같은 구름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물결. 또다시 마음이 술렁인다. 슬며시 남은 연가를 살펴본다. 좌뇌가 스멀스멀 다가온다.
  
 ‘그냥 조퇴해. 쪼다 자식. 인생 뭐 있냐?’
  
 그때 저 멀리 소장님이 나에게 다가온다. 서둘러 화면을 내린다. 인천 앞바다는 한글 기안문 속에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는 일상의 ‘나’가 되어 소장님을 맞이한다. 좌뇌의 비웃음과 조롱을 뒤로한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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