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넷, K의 주름이 깊어졌다.

정답은 없는 문제에 대한 고민.

by 실배

오전부터 단톡 방에 불이 났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조정되면서 모임이 가능해졌다. 3월, 6월, 9월, 12월, 1년에 4번 보는 모임을 올해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벌써 9월을 넘어 10월에 다다랐다. 만나자는 파와 만나지 말자는 파로 나뉘어 피 튀기는 논쟁이 벌어졌다. 그 안에서 소심하게 눈치만 살폈다. 결국 사람이 덜 붐비는 한적한 장소에서 만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누군가를 보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 될 줄이야.


우리는 시내로 나가지 않고 동네에서 만났다. 다들 마스크로 무장하고 마실 나오듯 편한 복장으로 나타났다. 하긴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 알고 지낸 지 40년이 넘은 사이이다. 겁 없이 세상에 들이대던 패기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얼굴 가득 근심 꽃이 피었다. 오래간만에 보아서일까. 그새 다들 많이 늙었다. 그중에서도 K의 얼굴이 유독 상했다. 뽀얀 얼굴이 귀공자 같아서 같이 다니면 후배로 오해받던 동안의 소유자였다. 얼굴에는 새빨간 여드름이 득실댔고, 이마에는 못 보던 주름이 늘었다. 무슨 일이 있던 것이 분명했다.

한두 잔 술잔이 오가며 분위기는 조금씩 달아올랐다. 자연스레 시선은 K에게로 향했다. 우리 중 눈치가 덜 발달된 I가 불쑥 말을 꺼냈다.

“너는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무슨 일 있어?”라며 훅하고 펀치를 날렸다.

K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근심 가득한 얼굴이 낯설었다. 사실 K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부러움을 한가득 받았다. 오래 다니던 중소기업을 그만둔 후 재취업을 한다고 자격증 준비를 조금 하더니 이내 아버지가 하고 있던 임대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취업은 안 하려고. 왜 그리 힘들게 살았나 모르겠어. 지금 삶이 만족스럽네.”


역시 조물주 위에 건물주였다. 늦은 출근(사실 출근이랄 것도 없지만), 이른 퇴근은 그에게 시간을 선물했다. 여유로움은 쇼핑몰이라는 취미생활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사돈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더니. 티는 안 냈지만 장이 배배 꼬였다.


그랬던 K가 우리 앞에서 그늘을 드리웠다. 이유인즉슨. 몇 달 전 아내와 아이들을 방콕으로 유학을 보냈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가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살던 집은 전세를 주고, 일하는 곳 근처로 이사 왔다. 밥도 간편식으로 대충 때우고 헛헛한 마음에 술로 날을 지새운다고 했다. 심지어 금요일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마셔서 토요일 하루를 지웠다. 불규칙한 생활은 그를 노화시켰다.


K는 말로만 듣던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최대 5년을 기획한 유학이었다. 임대업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 힘들다는 말을 끝없이 늘어놓았다. K의 말을 들은 L과 M도 아이들 유학을 고려했었다는 말에 놀랐다. 다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

나도 몇 년 전 아내와 아이들 유학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아내는 방학 때 단기 어학 코스라도 보내고 싶어 했다. 여유가 된다면 장기 유학을 보내고 싶다는 말에 식겁했다. 물론 우리 형편에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보다도 나는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고 싶은 마음이 일도 없었다. 일생에 한 번밖에 경험할 수 없는 아이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잃어버릴 수 없다.


나는 아버지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기억이 없다. 아버지 직장이 멀리 지방에 있는 바람에 1년에 몇 번 보기도 힘들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아버지와 함께 지냈는데, 이미 벌어진 틈을 메꾸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도 어색함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참. 아버지의 부재는 내내 마음에 외로움을 심어 놓았다.


물론 정답은 없다. K도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런데도 아이가 넓은 세상 속에서 좋은 기회를 얻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으리라. 나 역시도 경제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아내의 설득에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모가 되고 보니 내게 좋은 것보다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나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K도 마음껏 아내와 아이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의 주름이 더 깊어지기 전에.






ps. 이 글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조정되었던 10월의 어느 날에 있었던 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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