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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Dec 13. 2020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지난가을의 사연을 브런치 라디오에 보내며.

몹시 바쁠 땐 왜 딴짓을 하고 싶을까. 학교 다닐 때 시험이 코앞이면 안 보던 TV 드라마에 눈이 가고, 그렇게 읽으라고 해도 펴지 않던 책은 얼마나 재밌던지.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들로 인해 그날도 밝은 달을 쳐다보며 퇴근했다. 하루의 피곤이 고스란히 쌓여있는 지하철 어느 구석 의자에 앉아 핸드폰 조그만 액정 속을 탐닉했다. 그때였다. 구독하는 작가님의 프로젝트 제안 글이 올라왔다. 이름하여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였다. 책장 구석에 숨어있던 나만의 책을 꺼내 소개하는 것이었다. 각자의 브런치 매거진에 글을 발행하고 나중에 모아 브런치 북으로 발간한다고 했다.      


“책이 가장 기뻐할 것입니다. 문장은 다시 빛날 것입니다. 삶을 되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책을 우리 함께 발견합시다!”      


격양된 작가님의 문구만큼이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안돼. 지금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얼마 전에 다른 일도 벌였잖아. 제발 정신 차리라고.’ 그래 맞다. 같은 팀 김 주임의 갑작스러운 휴직으로 일은 두 배가 늘었다. 그와 중에 오랜 글 벗들과 글을 메일로 보내는 구독 서비스까지 시작했다. 바쁜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무의식적 현상이 분명했다.


정확히 스무 명 만 참여가 가능했다. 댓글로 참전 소식이 들려왔다. 괜스레 손가락만 대었다 뗐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덜컥하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이런 대책 없는 저지름이란. 너 어쩌려고?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당장 떠오른 책도 없으면서. 참여 인원이 늘어 최종 26명의 작가가 결정되었다. 잃어버린 책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나둘 매거진이 발행되었다. 글의 퀄리티는 기본이고 소재가 신선했다. 그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책들이었다. 이런 고수들 앞에서 겁 없이 참여하겠다고 했다니. 불안을 넘어 공포가 찾아왔다.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지금이라도 포기를 해야 하나. 아냐. 그럴 순 없지. 일단 칼을 뽑았으니 뭐라도 잘라야지.      


잠시 한숨을 돌리려 테이블에 앉았다. 그때 눈앞에 하얀 책장이 보였다. 그 안에는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책들이 가득했다. 그 사이로 작고 귀여운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제목이 ‘책방 여행 마을 이제 곧 망할 듯’이었다. 맞다. 이 책이 있었지. 책을 보는 순간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한 창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가던 시절, 우연히 독립 서점에서 진행하는 합평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서점 이름이 ‘책방 여행 마을'이었다. 서점을 둘러보던 중 제목이 신선해서 물었더니 책방 주인이 직접 출간 책이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책을 읽고 한 청년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았었다. 그런 소중한 기억을 홀라당 잊은 체 어디에 두었는지도 몰랐다니 이런.      


그날 발견 덕분에 무사히 매거진을 발행할 수 있었다. 저지름병 때문에 피곤하지만, 덕분에 얻는 것도 분명 있다. 글을 쓰며 소중한 추억을 찾았고, 함께 참여한 전우의 글을 읽고 나누며 전우애를 쌓았다. 브런치 공간을 넘어 소통하는 기쁨도 누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프라인 모임 때 출장으로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 또 좋은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왠지 이번 프로젝트가 끝이 아닐 것 같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면 주저 없이 참전하고 싶다. 결과를 떠나 글로서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 가을, 그 시간이 소중했기에 이렇게 글에 담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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