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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12. 2021

파리 공원엔 에펠탑이 있었다.

때론 양치기 소년도 진실을 말한다.

아내와 안방 침대에 누워 평온한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아이들의 습격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둘째는 아내와 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고, 첫째는 침대 오른쪽에 끄트머리에 누워 떨어질 락 말락 했다. . 잠깐의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는 비정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첫째는 몸이 근질거리는지 계속 내 옆구리를 간지럼 태웠다. 그 모습을 보고 둘째도 합세했다. 내 머리를 붙잡고, 각자의 뺨으로 사정없이 비벼댔다. 얼굴은 뭉개지고, 옆구리는 간지러움을 넘어 꼬집힘의 단계에 이르렀다. 비루한 중년의 몸뚱이는 심히 농락당했다.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내 모습을 보고 아내는 깔깔거리며 통쾌해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 사주한 것은 아닐까 의심마저 들었다. 뭔가 태세 전환이 필요했다.


"애들아. 그만하고 우리 산책 가자. 아빠가 붕어빵도 사줄게."


역시 먹는 것이 이기는 것이었다. 금세 반응이 왔다. 아이들도 답답했는지 나가자고 성화였다. 아내는 쉬고 싶은 모습이 역력했지만, 화살이 본인에게로 향할까 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갈지 정하기로 일만 남았다. 도로를 가로질러 문래역까지 걸어가려고 했으나 칼바람이 두려웠다. 그때 아내가 옆동네 파리 공원을 가자고 제안했다. 한국에 왠 생뚱맞게 파리라니. 그 존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가본 적은 없었다. 그럼 유명한 에펠탑이라도 있는 걸까. 장소를 정하고 진기한 이름에 농담을 던지던 찰나 첫째가 말을 꺼냈다.


"아빠. 정말 거기에 에펠탑이 있데. 친구한테 들었어."


아내, 나, 둘째는 그 말을 들은 후 모두 같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 밥 먹듯 뻥을 치는 녀석이었다. 못 믿겠다는 우리의 모습에 몹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사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못 믿겠다 이거지. 검색하지 마. 가서 직접 확인해보자고. 만약 있으면 다들 각오해."


이런 황당한 일을 보았나. 그래 좋다. 가서 확인해보자. 비장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칼바람이 생생 불었다. 첫째는 혼자 초겨울 얇은 잠바를 입었다. 더구나 지퍼도 채우지 않았다. 눈에 이글거리는 불꽃이 훨훨 타올랐다. 어째 불안한 걸.


이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공원이었다. 파란불로 바뀌는 순간 첫째가 가장 먼저 뛰어갔다. 우리도 열심히 뒤따라갔다. 이내 빨리 오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가보니 에펠탑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그 옆에는 개선문도 있었다. 물론 실제 건물이 아닌 모형물이었다. 그래도 정말 있었다니. 한껏 의기양양한 첫째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대가는 처절한 응징이었다. 날아오는 눈 뭉치를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에고고. 평소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던 둘째는 사진을 찍으며 대리 만족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한국과 프랑스와 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1986년에 파리에 서울광장을 세우고, 1987년에는 서울에 파리 공원을 조성한 것이었다. 심지어 서울광장은 삼태극 무늬로 꾸미고, 파리 공원에는 프랑스식 화단을 조성하는 등 양국의 전통 양식을 조화롭게 반영했다고 한다. 신기하게만 여겼던  이름 안에는 이런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첫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니. 덕분에 궁금증만 품고 넘겼던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누가 물으면 그 뜻을 정확히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한 편, 첫째가 얼마나 억울했을까 생각하니 몹시 미안했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신이 마음 가득 퍼져있다. 그래. 다음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어 자.

 

늘 이름이 왜 이래 했던 파리 공원에는 진짜 에펠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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