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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14. 2021

거침없는 하이킥의 역습

역습에 맞서 가족을 지키자.

요즘 식사 때면 둘째는 패드를 열어, wave로 하이킥 시리즈를 튼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등 구분 없이 본다.

결혼하고 TV가 있던 시절에 아내와 드라마를 종종 시청했었다. 자연스레 아내의 습관 하나를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드라마가 있으면 무한 반복해서 보는 것이다. 그 당시 아내가 꽂힌 드라마가 하이킥 시리즈였다. 얼마나 둘이 깔깔대며 보았는지, 신혼 때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말도 계속 들으면 처음의 감흥이 못한 것처럼 매일 같은 드라마를 보게 되니 슬슬 질리게 되었다. 티도 못 내고 냉가슴만 앓다가 용기를 냈다. 이제 조금 질리니 다른 드라마를 보는 것이 어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대답 대신 아내 눈에서 붉은 광선을 보았다. 입을 다물어야 함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내가 하이킥을 볼 때면 나는 자연스레 다른 활동을 했다. 얼마 뒤 처가살이를 시작하면서 채널권은 장인어른에게 있었다. 주로 보던 프로그램은 여행과 골프였다. 가족이 모두 모일 때면 주로 여행 채널을 틀었는데, 그러면 하나둘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그 이유는 금방 알게 되었다. 장인어른도 매번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서 보셨다. 아내의 재방송 사랑은 유전이었다.

이사한 후 오롯이 우리 가족만의 공간이 생겼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다. 함께 모였다가도 각자의 방에서 개인 시간을 즐겼다. 그런데 거침없는 하이킥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그래. 오래간만에 보아서 옛 추억도 떠올리고 좋았다. 그러나 계속 반복되면서 피로감이 점점 쌓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한 몸이 되어 얼마나 즐거워 보이던지. 그 행복을 깰 수 없었다.

"아빠. 너무 재밌지 않아? 저 아저씨 봐봐."
"으. 응. 그런데 나는 저 장면을 25번은 보아서 그리 재밌지가 않네. 그리고 나 할 말 있어."

순간 아내의 눈에서 예전에 보았던 붉은 섬광이 비쳤다. 겁이 났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우리 저녁때만이라도 하이킥 보지 말고 이야기도 하면서 밥 먹으면 어떨까?"

둘째에게서 반응이 즉각 왔다. 아빠는 늘 아빠 마음대로 한다며 소리를 높였다. 옆에 있던 첫째도 합류했다. 거침없는 둘의 합공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때였다. 아내의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그래. 우리 아빠 말처럼 하자. 점심때만 보고, 저녁에는 보지 말자."

아내의 말에 결국 그렇게 결정되었다. 둘의 따가운 시선 느껴졌지만 못내 모른 척했다.

사실 우리가 TV를 없앤 이유도 그 시간에 책도 보고 대화도 나누자는 취지였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의미가 없었다.

뜻하지 않는 하이킥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가족의 평화도 지키면서 밥상머리 교육도 해야 한다. 어렵다. 그러나 반드시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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