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누워도 부부이다.
그래도 얼굴 보고 자고 싶네.
거대한 산맥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닿을 수 없는 애타는 마음은 메아리처럼 하얗게 흩어졌다.
눈을 떴다. 꿈을 꾸었구나. 록키 산맥처럼 높이 솟은 산맥은 잿빛 오리털 이불이었다. 아내는 저 너머에 돌아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시커먼 뒤통수와 거친 숨소리만 느껴질 뿐이었다. 발 뒤꿈치를 들고 길 고양이처럼 흔적도 없이 공간을 벗어났다.
13년 만이었다. 긴 세월 돌고 돌아 우리는 다시 한 침대에 누웠다. 어떤 기대였을까.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슬쩍 손을 잡거나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며 폭 안고 자는 이런 것. 현실은 이불 산맥을 사이에 두고 나는 창가 쪽 흰 벽을 아내는 화장실 누런 문을 바라보며 잠이 든다.
어쩌면 예정된 일이 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잘 때 몸이 닿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신혼 때, 팔 베개라도 할라치면 불편하다며 털어냈다. 돌아누운 채 그나마 엉덩이를 붙이고 잤다. 서로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다. 처가살이 후 아들과 둘이 자게 되면서 그간 못해본 팔베개며 꼭 안고 자는 한을 풀었다. 아들은 품에 안겨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금세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거대한 우주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가끔 내 배를 베고 자는 바람에 가위에 눌리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하긴 아내와 나는 잠에 있어서는 너무 다르다. 침대에 눕는, 아니 머리가 닿는 순간 잠이 드는 나와 달리 아내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내가 잠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반대로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뜨는 나와 달리 아내는 아침잠이 많다. 프리랜서란 직업 특성상 일찍 일어날 이유도 없었다. 반대로 아내는 내가 깨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함께 잠들 수 없으니 그런 로맨틱한 상황은 꿈도 못 꿀 일이 리라. 밤이 없는 나와, 아침이 없는 아내의 운명 같다.
며칠 전 아내가 자다가 핸드폰이 잘 못 울려 겁이 났었다고 했다. 그래서 옆에서 자고 있던 내 팔을 꼭 붙잡았는데, 깨지도 않고 쿨쿨 잠 만 자더라며 눈을 흘겼다. 나도 모르게 '아까비'란 고전 용어가 튀어나왔다. 그럴 때 꼭 안고 무서움을 덜어 주었어야 했는데. 역시 나는 타이밍에 젬병이다.
그래도 고마운 건 코를 몹시 고는 나를 핑계로 둘째 방에서 잘 만도 한데, 꼭 돌아와 옆에서 함께 잔다는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어딘가. 돌아 눕 건, 바로 눕 건, 뒤집어 눕 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부부의 연을 맺고도 여러 상황으로 인해 견우와 직녀처럼 살았다. 지금은 비록 돌아 누웠지만, 언젠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잠 들 날을 꿈 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