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한 세 문장.

조금만 천천히 가주렴

by 실배

'너, 나를 서운하게 만들어. 좀 더 다가가고 싶단 말이야. 쳐놓은 가림막을 조금 열어 주면 안 될까.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벌써 이러면 어떡하란 말이야.'

요즘 딸에 대한 마음을 담은 세 문장이다. 변화는 이사 오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방이 생기면서 마음에도 커다란 문이 생겼다. 수시로 잠겨서 볼 수 없다. 열쇠 꾸러미를 가져야 하나씩 넣어보지만, 열리지 않는다. 가끔 문틈 사이로 희미한 흔적만 들린다.

며칠 전이었다.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문이 활짝 열렸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려는 순간 '쿵'하고 닫혔다. 조잘조잘. 뒤늦게 낯선 신발을 발견하곤 친구가 왔음을 알았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환한 빛에 더욱더 초라해졌다. 그저 문밖에서 챙겨 줄 것 없냐는 말에 돌아오는 싫어란 한마디뿐이다.

자꾸 조심스럽다. 딸의 시선은 때론 날카로운 칼날 같다. 외출할 때 입는 옷은 유행이 한참 지나 부끄럽단다. 불룩 튀어나온 뱃살은 빨리 사라지라며 재촉한다. 오랜 습관을 고치라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신경 쓰면 쓸수록 부자연스럽다.

도통 알 수 없다. 내내 겨울이다가 드물게 봄이 찾아온다. 내가 알던 그 모습이다. 팔뚝을 비비며 좋아하는 반달눈을 뜬다. 저 눈에 배라도 띄어 한없이 노를 젓고 싶어라. 그간 못한 말을 다 하려는 듯 끝없이 이야기를 만든다. 그랬구나. 벌써 친구가 생겼네. 아이고 어째. 서운했겠다. 숙제가 많아 힘들겠다. 간절한 추임새는 한 겹, 두 겹, 세 겹 끝도 없이 이야기를 만든다. 혹여나 끊길까 봐 참 열심이다. 여세를 몰아 산책을 한다. 오른손은 내 팔에 꼭 낀다. 편의점에 들러 좋아하는 치즈와 보리차를 사준다. 고맙다며 잡은 손에 힘을 꽉 쥔다. 시간아 천천히 흘러가 주렴.

매일 봄이면 좋으련만. 금세 겨울이다. 찰나의 기억은 애끓게 만든다. 내게 보였던 따뜻함을 손난로에 담아 추위를 견딘다.

자연스러운 거겠지. 주변 선배의 성토가 현실로 다가왔다. 어떡하지. 아직 놓지 못하겠는데. 그러기엔 상실감이 너무 큰데. 조금만 천천히 가주면 안 되려나.

처연한 마음의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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