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시간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주말에 있었던 아들과 부딪힘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서로 감정만 상했다. 아내 말이 다 맞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정하고 싶었다.
사건의 발단은 아들의 PPT 숙제였다. 학교 수행평가 과제였고, 시나 소설 중에 선택하여 작품 소개 및 질문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산책하면서 구상을 했다. 나는 아들에게 먼저 종이에 기획해보라고 제안했다. 그것이 완성되면 PPT 만드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딸이 운동을 더 하길 원하여 아들을 먼저 보냈다. 1시간여 정도 지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과제는 하지 않은 체 핸드폰에 코를 박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방에는 옷가지, 책, 가방을 부챗살처럼 펼쳐 놓았다. 급하다고 도와 달랄 땐 언제고 저렇게 여유 있게 게임이나 하고 있다니. 슬슬 불덩이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들, 과제 먼저 해야 되지 않을까?"
"알았어. 게임 좀 하고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한다는 녀석이. 그리고 좀 더 기다렸으나 그대로였다. 입에서 짜증 섞인 말이 나왔다. 그에 아들도 크게 반발했다. 큰소리가 오갔다. 결국 빅뱅이 일어났고, 그런 식이면 도움 줄 수 없다는 말로 끝이 났다.
사태를 파악한 아내가 나섰다. 아들을 진정시키고, 옆에서 과제를 함께 하기 시작했다.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엔 이만한 것이 없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숙제 기간을 다시 확인하니 이번 주까지 여유가 있었다. 바람 타고 흘러오는 소리를 들으니 기본적인 구성은 마무리한 듯했다.
아내는 좀 더 여유를 갖고 기다려주길 바랐다. 알면서도 어렵다. 갈수록 여유 없음을 느낀다. 성질 급한 신 씨 가문의 유전에 핑계를 대고 싶지만 옹색했다. 아내에게도 알았다고 하면 좋으련만. 아들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사실 불만도 쌓여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손을 놓고 있다가 닥치면 닦달하듯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믿는 구석이 있어 저러나 싶었다. 본인도 어느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이러면서도 주말이면 티격태격하며 PPT 숙제를 도와주고 있을 것이다.
좀 더 천천히. 알면서 안 되는 미지의 영역 같다. 정답을 알면서도 쓰고 싶지 않은 이유는 무얼까. 아내의 말처럼 이러다 멀어지면 어쩌려고. 어디 참을성 증진 학원이라도 있으면 다니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