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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옷장에서 모르는 가방을 발견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by 실배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잠시 외출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려 안방 옷장 앞에 섰다가 까만 물체를 발견하곤 흠칫 놀랐다. 이미 이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 거실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오빠가 주는 화이트데이 선물이야."

그랬었나? 기억의 회로를 과거로 열심히 돌렸다. 화이트데이가 임박했을 때쯤 아내는 절대 꽃과 사탕은 사절이라고 못을 박았다. 아차차. 지나가는 말로 그럼 선물은 어떠냐고 물었었다. 그때 언뜻 귀걸이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가방으로 둔갑했구나. 혹여나 어색함을 들킬까 봐 머쓱한 웃음만 지었다. 그깟 가방이 뭐라고. 쪼잔한 녀석 같으니라고.

하긴. 아내에게 변변한 가방 하나 없었다. 가끔 인터넷으로 가방을 보여주곤 어떠냐고 물었다. 그 의미는 곧 갖고 싶다는 뜻이었다. 사라고 해도 망설이다가 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 돈으로 아이들 옷을 사고, 필요한 살림살이에 보탰다.

연애시절 아내는 세련되고 멋쟁이였다. 그랬던 그녀가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사는 법을 잊었다. 특히 아이들이 태어서부터는 우선순위는 그곳에 있었다. 본인은 후줄근한 옷을 입을지언정, 철마다 아이들과 나를 챙겼다. 구멍이 송송 뚫린 목 늘어난 셔츠를 보고 있으면 미안함이 허연 달처럼 차올랐다.

그래 잘했다. 잘 샀어. 아내에게 예쁘다고 하니 아이처럼 기뻐했다. 굳이 안해도 되건만. 목에도 걸고, 어깨에도 매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여라. 옆에서 얼마나 고르고 고른 가방인지를 강조했으면 귀에 딱지 붙는 줄 알았다.

그깟 가방 하나가 뭐라고. 내내 눈치 보는 아내 모습에 짠했다. 그래도 이제는 밖에 나갈 때 더는 고민 안 하겠지. 내 다음엔 더 좋은 가방을 사드리리라.

한동안 봄바람에 살랑거릴 아내를 떠올리며 슥하고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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