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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r 31. 2021

글에 늙고 젊음이 있을까.

부끄럽지만, 당당하게.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분주했다. [문학인-크럽] 글쓰기 줌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첫째에게 물었더니 저녁에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다행이다. 첫째 방에서 모임 참여 허락을 받았다.

늘 그렇듯 주저함이 찾아온다.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주책은 아닐까. 그런데도 글을 쓴다는 것에만 의미가 있다며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이번 달은 바쁜지 참여율이 저조했다. 먼저 안부를 주고받았다. 대학생이었던 친구는 첫 취업을 했고, 다른 친구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자연스레 화이트보드에 내놓은 글감에서 퍽퍽한 삶이 보였다. 사실 나 역시도 그 고민에 자유롭지 못하다. 여러 글감 중 '편의점'이 눈에 띄었다. 글감 이유도 편의점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나도 예전에 야간 근무를 한 경험이 있다. 밤의 편의점은 지친 사람의 안식처가 되었다가, 얼큰히 취한 아저씨의 술집으로도 변한다. 언뜻 여유로울 것 같은 시간이 쉴 틈 없었다. 그때 알았다. 밤의 의미가 각자마다 다르다는 것을.


끝내 편의점을 고르진 못했다. 내 삶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걷기'에 대해 썼다. 15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생각이 많아서인지 중간 턱에서 끝나 버렸다. 아쉽다. 그냥 의식의 흐름을 따라갈걸. 주저리주저리 설명만 늘어났네. 에이, 맘에 안 들어.

문우들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한순간에 학생에서 (어이)가 되고, 식당 밥이 편의점 한 끼로 둔갑하고, 포근한 방 한 칸 이 고시원 차가운 바닥으로 변하는 상황을 표현했다.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이 어찌나 생생한지. 여러 가지 시작의 쉼표만 나열되고 마침표 없는 삶에 대한 토로. 가까이 있고 싶으면서도 혼자 있고 싶은 맘. 모두 내 이야기 같았다. 그 시기가 다 그래. 나도 그랬잖아란 말에 숨기엔 그들이 가진 고민의 깊이가 달랐다. 겉치레 없이 솔직, 담백한 글의 힘을 느꼈다. 괜스레 내 손이 부끄러웠다. 새벽에 빨래방에 갔다가 콜을 기다리는 초조한 대리 기사분과 묘한 신경전에 관한 이야기는 애잔하면서도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나도 짧은 글을 내놓았다. 부족한 글에도 따스한 말을 받았다. 걷기란 각자마다 서사를 끌어내는 마법 같다. 현재의 삶에서 걷기가 주는 의미를 저마다 쏟아냈다. 그들의 이야기에 기대어 슬쩍 따라 걸었다. 숲 속의 작은 오솔길의 지저귀는 새소리,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따라 흐르는 졸졸 소리, 도시의 딱딱한 시멘트에서 나는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가 귓가로 들렸다. 잠시 눈을 감고 떠올렸다. 좋네. 참.

모두의 글이 끝나고 짧은 소감을 나눴다. 처음의 주저함은 사라지고 그저 글 쓰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런 신선한 자극이 좋다. 늘 보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에서 벗어나 솔직한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으니까.

우리는 다음 달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노트북 전원을 끄면서 진한 여운에 좀 더 머물다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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