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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pr 07. 2021

내 이름은 들장미 소년

내 기필코 이겨내리라~!

이제 막 지긋지긋한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찌릿하며 왼쪽 어깨 위로 기분 나쁜 통증이 올라왔다. 무언가 심상치 않았으나 좀 더 지체했다가는 막 차를 놓칠 것 같아 서둘러 정리하고 나왔다. 지하철 안은 한산 했다.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글도 읽고 댓글도 달았다. 좀 전의 통증은 이제 욱신거림을 동반했다. 고개를 숙일수록 아픔이 커져갔다. 핸드폰을 닫고 뒤에 머리를 기댔다. 집에 도착해서 얼른 씻고 침대에 누웠다. 푹신해서인지 조금 나은 듯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곯아떨어졌다.


불이라도 난 것인가. 뜨거운 기운이 엄습해서 눈을 떴다. 발원지는 어깨였다. 누가 송곳으로 후벼 판 듯 강한 통증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악'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1시였다. 끙끙대며 잠을 자는 듯 마는 둥 날을 샜다. 하루를 버티고 주말에 바로 한의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 증상을 듣더니 책장에서 커다란 책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의학서적 같았는데, 디스크 환자에 대한 것이었다. 이미 디스크가 시작되었고, 그대로 두었다가는 수술까지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허리디스크는 수술하면 일부를 긁어낼 수 있지만, 목디스크는 그럴 수 없어서 다 긁어낸 후 인공 관절을 넣어야 돼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바로 장애우가 되는 겁니다."


등줄기로 찍하고 땀이 한 방울 흘렀다. 지금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고, 추나요법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속으로 '추나요법이 뭐지? 이름도 이상한 걸. 엄청 아픈 거 아냐?'라고 두려움에 떨었다. 모든 치료가 끝난 후 간호사는 제일 마지막 방으로 가라고 했다. 커튼을 열어보니 기다란 의자가 놓여있었다. 언뜻 보면 고문기구 같았다. 선생님은 신발을 벗고 그곳에 누우라고 했다. 다리를 묶었다. 도망갈까 봐 그런 것인가. 그리곤 다가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좌우로 꺾기 시작했다. 두둑, 두둑, 억 소리가 절로 났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시원함이었다. 끝난 후 선생님은 의자에 앉으라고 한 후 바른 자세를 알려주었다. 허리를 곧게 피고, 어깨는 활처럼 벌린 후 양 팔은 바닥에 붙인 채 일을 하라고 했다. 쉽지 않았다. 자꾸 고개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바른 자세를 잡았다. 선생님은 머리가 비 뜰 어질 수 있으니 거울까지 사서 수시로 점검하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썼던 매일 글쓰기를 중단하기로 했다. 글 쓰는 것을 멈추는 것은 아니고, 핸드폰으로 쓰는 것을 그만두는 대신 전 날 저녁에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zoom 독서 모임에 참여했는데, 회원분들은 처음에 정지 화면인 줄 알았다고 했다. 내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바른 자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나의 고백을 듣고는 너도나도 허리와 목 통증을 고백했다. 나만 아픈 것이 아니었구나. 위안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잦아들었지만, 계속 새벽에 잠이 깼다. 만성 피곤에 시달렸다. 몸이 이러니 글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신기한 것이 글을 쓰지 않는 동안 오히려 구독자가 늘었다. 요즘 글을 쓰면 꼭 한두 명의 구독자가 사라진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이라도 유발하는 것인가. 이리 씁쓸할 수가. 글을 쓰면 구독자가 줄고, 글을 쓰지 않으면 느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글을 썼으니 그럼.....


몸이 이러니 만사에 의욕이 떨어졌다. 수시로 찾아오는 고통은 코너로 밀어 넣었다. 병든 몸뚱이에 눈물이 찔끔 났다. 치열하게 일하고, 열심히 쓴 결과가 이런 것이라니. 그때였다. 어릴 때 누나들 틈바구니에서 보았던 만화영화가 생각났다. 바로 들장미 소녀 캔디였다. 내용보다 노래가 귓가에 울렸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누가 참기 싫어서 우냐. 아프니깐 그렇지. 그렇다라도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진짜 웃고 달리고 싶다. 


계속 치료를 받은 덕일까. 점점 나아졌다. 오늘은 아내 심부름으로 당근 마켓 무료 나눔으로 커피 머신을 받으러 따릉이를 타고 갔다. 그간 운동할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용기를 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검푸른 도시 길을 가로질렀다. 아직 통증은 남았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힘찬 발길질은 혈관을 타고 곳곳에 기분 좋음을 주입했다. 돌아오는 길, ET 대신 커피 머신을 바구니에 넣고 휘양 찬한 달 빛 위로 날아갔다.


그래. 지금의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곧 이겨 낼 것이다. 울지 않고 참아내며, 푸른 들을 웃으면서 달려가고 푸른 하늘 보며 글을 쓰는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들장미 소녀 캔디, 아니 실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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