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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이름은 몰라

제발 모른다고만 하지 말아 줘.

by 실배

아들이 수행 평가로 농구 골밑 슛 넣기를 해야 한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30초에 10골을 넣어야 해서 만만치 않았다. 연습 삼아 시켜보았더니 체 5골도 넣지 못했다. 이유는 너무 멀리서 던져서였다. 거리와 자세를 교정해주고, 몇 번 시도한 끝에 드디어 성공했다. 그리곤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일대일을 제안했다. 녀석,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테다. 제법 힘이 늘었지만, 아직 기술이 부족했다. 초반에 강하게 밀어붙이더구먼 제 풀에 꺾였다. 결과는 10대 6이었다. 전에는 3골 넣기도 힘들더구먼, 조만간 패배를 맛볼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다음날 퇴근하고 돌아왔더니 아들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결과가 무척 궁금했다.


"아들, 수행 평가 어떻게 되었어?"

"몰라."

"모르긴. 통과했어, 못했어?"

"모른다고."


이런 샤발라를 보았나. 결과는 둘 중 하나인데 모른다니. 요즘 늘 이런 식이다. 100도씨에서 팔팔 끓는 기름처럼 끌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방을 나왔다. 거실에 있는 아내에게 물었더니 성공했다고 한다. 그 한마디가 그리 어려울까.


요즘 아들은 몰라가 일상이다. 기분이나 감정을 물어보아도 몰라, 하고 싶은 것을 물어보아도 몰라, 심지어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아도 몰라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이름을 붙였다. 아들, 너의 이름은 몰라이다. 사실 나는 무척 궁금하다. 이제 중학교 입학했으니 친구도 새로 사귀고, 수업도 달라진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몰라로 일관하니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정말 묻고 또 물어 겨우 알아낸 것이 친구는 3명 사귀었고, 체육 수업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나도 저 때 그랬나 싶어 돌이켜보아도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사춘기 때문일까 싶어도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가 표현 없는 것이 무척 싫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농담도 잘하고, 친절했는데 유독 가족들에게만 무뚝뚝했다. 사랑한다는 말도 군대 신입병 때 편지로 처음 받았다. 그래서는 나는 나중에 아이를 키우면 표현을 많이 해주리라 다짐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아이가 태어났다. 그 기쁨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단어나 문장으로 담을 수 없을 만큼 컸다. 힘껏 마음을 표현했다. 수시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고, 늘 안아 주었다. 아이도 그 안에서 사랑스러운 꽃을 피었다. 작고 귀여운 목소리로 "아빠"라고 부르면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감동했다.


하지만 웬걸. 키가 한 뼘씩 커갈수록 표현은 두 뼘씩 작아졌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슬슬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나에게 온갖 것을 말했던 아이는 점차 입을 닫기 시작했다. 그리곤 몰라가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에 처음엔 놀랐고, 나중엔 좌절했다. 이유가 무얼까. 납득할 수 없었지만, 타고난 성향이 그랬다.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쑥스러워 내놓기 어려웠다. 그걸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다.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언젠가 되겠지 하며 포기하지 못했다.


저녁때 영어 공부를 한창 하고 있는 아들에게 쓱 다가갔다. 그리곤 물었다.


"아들,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

"몰라"


역시나였다.


"아빠가 이름 하나 지었어. 이제부터 너는 신몰라야. 알았지?"

"몰라."


이룬 내가 졌다 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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