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해
늘 후회는 돌아서면 찾아올까.
아들의 생일을 위해 정시 퇴근 후 집으로 왔다. 주말에 친구들과 정식 파티를 할 예정이라 간단히 식사만 하기로 했다. 아들은 아직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생일 케이크도 미뤘는데 뭔가 허전했다. 아내는 배스킨라빈스에서 큐브 와츄원을 사서 그 위에 초를 놓고 간단히 하면 어떠냐고 했다. 좋았다. 딸과 함께 사러 갔다.
아내는 체리쥬빌레, 아들은 엄마는 외계인, 나는 슈팅스타였다. 딸은 레인보우 샤베트였는데 메뉴에 없었다. 입을 뾰족 내밀며 심술을 부렸다. 그러면 콘이나 컵으로 사주겠다니 고개를 저었다.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오늘은 오빠 생일이잖아. 네가 좀 양보하면 안 돼?"
눈물이 그렁그렁. 꼭 그렇게 말했어야 했냐며 훌쩍이는데 난감했다. 어르고 달래서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을 샀다. 밖으로 나오며 스티커에 붙은 레인보우 샤베트 특가 상품을 노려보았다. 이렇게 인기 메뉴라면서 큐브 와츄원에도 없냐.
아들은 이미 돌아와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아내는 아들 생일을 위해 좋아하는 등갈비를 했다. 내가 대표 기도로 생일을 축하하려는데 계속 게임 중이었다. 슬슬 마음에 불이 올라왔지만 다스렸다. 아들의 "3분만"을 차분히 인내했다. 드디어 맛있는 식사를 시작했다. 오늘 채널권은 주인공인 아들이었다. 역시나 러닝맨을 틀었다. 그래, 아들의 생일이니깐 기쁜 마음으로 보아야지. 몇몇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보였지만 눈을 감았다.
식사를 마치고 분리수거 준비를 했다. 양이 많아서 혼자 가기 힘들었다. 아내가 함께 가겠다는데, 딸이 나섰다. 귀찮아서 잠옷 위에 외투를 걸치고 양손 가득 쓰레기를 들었다. 아내, 아들, 딸 모두 손사래를 쳤다. 당장 옷을 갈아입고 나가라며 입을 모았다. 하라면 하기 싫은 청개구리 DNA가 나왔다. 잔소리를 뒤로하고 얼른 버리고 왔다. 딸은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남은 것을 다시 들고 나왔다. 챗, 가지도 않을 거면서 말들만 많아.
돌아오니 아들은 여전히 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미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했다. 종일 게임 중이냐며 뭐라 했더니 삐죽 댔다. 생일인데 잔소리한다고 방으로 사라졌다. 거실에 어질러진 딸의 물건도 거슬렸다. 치우고 자라며 한소리를 했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갔다.
생일인데 그냥 좀 넘어가지. 좋은 날 이게 뭐니. 역시나 후회가 찾아왔다. 잠시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잠이 들었다.
"똑바로 자야지. 그렇게 자면 나중에 아파."
멀리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꿈결에 돌아보니 딸 같았다. 안경을 벗어두고, 핸드폰도 탁자 위에 놓고 바른 자세로 누웠다.
"아빠, 잘 자."
그 소리에 잠이 들며 '고맙고, 미안해.' 허공에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