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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n 29. 2021

계장님, 사인 좀 해주실래요?

책을 출간하고 찾은 의미

월요일 오전, 아직 주말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로 향했다. 오전부터 요청 자료를 처리하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커피를 뜨거운 물에 녹여, 얼음을 넣고 차가운 냉커피를 만들었다. 짙은 황토 빛깔은 묘한 목마름을 유도했다. 저 멀리서 옆 옆 부서 여직원이 출입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평소 나와 업무적으로 엮일 일이 없어서 그저 인사만 하고 지냈다. 아마 건너편 김 주임을 만나러 왔겠지 하며 다시 커피에 몰입하는 순간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계장님,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헉. 그녀의 손에는 '모든 것은 독서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책이 들여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일에 말도 더듬거리며 책을 받아 들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간신히 몇 자 적었다. 평소 밝은 모습으로 대해주어 감사하다. 늘 행복하길 바란다. 블라블라.....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럴 땐 초등학생 딸내미보다 못한 글씨가 원망스럽다. 감사하다는 말을 글보다 더 많이 한 채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사실 회사에서는 출간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혹여나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까 신경 쓰였다. 하긴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가까운 몇몇 만 알 뿐이었다. 괜스레 안타까운 마음에 빈 종이 끄적거리다 말았다. 미리 준비라도 했어야 하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혼자 김칫국을 마시네.


점심때 비가 오기는 했으나 이런 날이 폭포를 보기 제격이라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섰다. 산 중턱에 다다라서 비가 그쳤다. 폭포수 밑에 흐르는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씻어냈다. 이제 길벗과 함께 걸을 날도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사라지는 것은 늘 아쉬움을 동반하다. 지금 함께함을 소중히 남겨야지. 지나고 보면 일을 열심히 한 기억은 나지 않고, 이런 추억만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서둘러 다녀와서 그런지 오후 일과가 시작되기 전 시간이 남았다. 덜덜거리는 선풍기 앞에서 땀을 식혔다.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팔로우를 하며 DM을 보냈다. 최근에 시간 많은 해외 군인들의 피곤한 연락을 많이 받곤 짜증이 났었다. 다들 나라를 지키지 않고 무슨 해외 연애를 한다는 건지. 그냥 무시하려다 그분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니 책 소개가 많이 있었다. 그렇다면 믿을 만하네. 서둘러 답을 보냈다.


최근에 독서 모임 운영을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모든 것은 독서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책이 좋다고 추천을 해주었다고 했다. 우연히 저자 중 하나인 나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연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곤 독서 모임을 하게 된 계기, 운영 팁, 도서 추천 등 쉴 새 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심지어 독서 모임에 참여한 후 변화된 삶까지. 마치 북 토크를 하는 느낌이었다. 일단 아는 선에서 답을 해주었다. 책 목록도 선별해서 주었다. 감사하다는 답과 함께 앞으로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도 되겠냐고 하기에 언제든지 좋다고 했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신기한 경험을 했다. 마치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책이 나오는 것이 마냥 좋기만 했는데, 그걸 넘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이제 단독 에세이집도 작업이 거의 완료되어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오늘의 작은 일들이 용기를 주었다. 두려움은 걷어내고 좋은 마음만 가지고 천천히 가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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