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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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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n 30. 2021

떠나온 시간은 흘렀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반가움이 반가움을 더한 시간

소위 불 x 친구를 만났다. A는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나고 자라다 대학 무렵 연락이 끊겼었는데, 우연히 모교에서 교생 실습을 함께 하면 다시 연이 이어졌다. 드문드문 만나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 연락하는 정도만 되었다.

얼굴 한번 보자는 흔한 안부가 직접 모임으로 이어졌다. 다른 친구 B를 부른다고 했다. 얼굴과 이름은 기억이 나는데, 학창 시절 같은 반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색하면 어쩌지 했지만, 함께 보겠다고 했다.


오래간만에 다니던 중학교 부근을 갔다. 이 동네는 참 변한 것이 없네. 상점만 바뀌었을 뿐 위치나 구조는 그대로였다. 살짝 옛 추억에 사로잡힐 때쯤 A가 왔다. 씩 하니 미소를 주고받았다. 친구의 얼굴에서 보이는 세월의 흔적만큼 나도 그렇겠지. 군데군데 보이는 흰머리가 애처로웠다. 여전히 활발한 성격으로 닭갈비, 회, 감자탕 중 고르라는데 닭갈비로 정했다. B는 조금 늦는다고 해서 둘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얼큰히 한두 잔 마시던 중 B가 나타났다. 근 30년 만인데 주름 뒤로 예전 모습이 보였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다행히 넉살 좋은 A가 옛날이야기를 꺼냈고, 공유한 시간을 더듬어가며 분위기를 녹였다. 흘러 흘러 첫사랑에 다다랐고, 오랜 시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이름들이 나열되었다. 아재들은 그땐 그랬지 하며 서로를 놀려대다 애잔한 감성에 젖었다. 이 분위기 어쩔. 한번쯤 보면 어떨까 했다가 그건 큰일 날 것 같다며 다들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 어색함도 잠깐이고 그간 살아온 세월을 나누며 금세 가까워졌다. 어릴 때 친구를 만나면 좋은 것이 이런 것이리라. 다시 갈 수 없는 순수했던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기분이랄까. 현실 속 중년 아재에서 벗어나 10대의 혈기 넘쳤던 소년이 되었다.


금세 저녁 10시가 다 되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찰나, B가 과일 상점에 가더니 자두 두 박스를 검은 봉지에 담아 주었다. 자식도 참. 기어코 마을버스 정거장까지 함께 가더니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차에 타서 창문을 열고 불어오는 검은 열기를 느끼며 손을 흔들었다. 몇 정거장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를 문자가 왔다.


[친구..  오늘 반가웠어~~ 다음엔 찐하게 한잔 더 하세~~]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었는데, B가 연락을 주었다. 나도 이름을 저장하고, 다음에는 아쉬움 마음, 다시 꼭 보자는 답을 전했다.


달랑달랑 검은 봉지를 흔들거리며 걸어가는 길에 뭔지 모를 감정이 가슴으로 차올랐다. 어린 시절을 다시 마주해서였을까. 아님. 좋은 벗을 만난 소회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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