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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면 썩 물렀거라.

생소한 너는 누구니?

by 실배

오해였던 게야.


이번에 다녀온 문경에서 보았던 첫째는 그간의 모습과 사뭇 달라 놀랐다. 집돌이라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고, 사춘기라는 무기로 콕콕 찌르는 줄만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경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사람으로 옷을 갈아입고, 낯선 모습을 선보였다.


일단 밖에 나가서 들어올 줄 몰랐다. 또순이(처가댁에서 키우는 개) 옆에 꼭 붙어서 쓰다듬어주고, 대화하고 이보다 달콤할 수 없었다. 함께 산책하며 얼굴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나에게 나오라고 손짓하더니 처마 밑에 붙어있는 벌집도 보여주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는 그림 같지 않냐며 낭만을 뽐냈다. 심지어 툭 치고 나 잡아 봐라를 연출했다. 너는 누구냐? 귀신이면 썩 물렀거라. 첫째인 듯 첫째이지 않은 생명체에 경계마저 들었다.


좋아하는 핸드폰은 방 안 구석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다. 이미 첫째에게는 대자연이 친구였다. 창틀 너머로 비춘 모습은 자연과 하나였다. 저리도 될 수 있는 아이였구나. 물론 주변에 인가가 없어서 사람들 신경 쓸 일 없으니 마음의 경계를 푼 것이 가장 큰 이유 같다. 그간 집을 좋아했다기보다는 머리도 신경 쓰이고, 마땅히 나가서 할 일도 없어서 쉴 때 게임만 했던 것 같다. 속은 이렇게나 감성 덩어리였는데, 환경은 만들어주지 못하고 걱정만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잠시 들어와 저녁을 먹고 난 후 첫째 핸드폰이 울렸다. 아마도 친구에게 연락이 온 듯했다. 서둘러 방에 들어가더니 무려 한 시간이나 넘는 시간 동안 나올 줄 몰랐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문밖으로 삐져나왔다. 오늘따라 신기한 모습 많이 보여주네. 첫째 진짜 맞는 거지? 방에서 나온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늘 친구가 있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었다. 아내와 나는 속이 끓었다. 집에 초대하든지 아니면 약속 잡아 나가서 놀다 오면 좋으련만. "라떼는 말이야"며 잔소리만 했지 찬찬히 관찰할 줄 몰랐다. 아마 우리가 보지 못한 닫힌 방안, 학교에서는 이렇게 살곰한 모습이 있었다 보다. 걱정은 기우였다. 한 시간이 넘게 수다 떨 줄 아는 사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흐뭇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첫째는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감성과 친구와 소통하는 공감 능력을 갖춘 아이였다. 이제는 믿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어야겠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자. 그때 정말 귀신 아닌 거지? 내 아들 맞는 거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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