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퇴근 후에 아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시로 가족 평화를 위협하는 첫째 때문이었다.
온몸 가득 화가 가득 차서 어디 건드려만 보라는 태도로 사소한 자극에도 주체 없이 폭발한다. 아내, 나, 둘째 등등 대중없다.
일요일 저녁 테이블에 앉아 함께 핸드폰으로 손흥민 경기를 보고 있었다. 슬쩍 내 무릎에 기대더니 머리를 긁어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쓰다듬으며,
"어쩜 이렇게 강아지처럼 머리 긁어주는 것을 좋아할까?"
"뭐라고! 아빠! 아빠한테 개라고 하면 좋아!!"
갑자기 정색하며 큰소리를 쏟아내더니 문을 쾅 닫고 방으로 사라졌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강아지란 말이 그렇게나 폭발할 일인가. 그리고 방금까지 헤헤 호호하며 축구 보던 녀석은 어디 갔지. 순간 저 밑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당장이라도 방문을 열고 들어가 한소리하고 싶은 마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래,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잖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애써 경기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지금 가면 큰소리만 날 것 같았다. 잘 시간이 되어 침대에 누웠는데 쉬 눈이 감기질 않았다. 물론 사춘기임을 잘 알지만, 도가 지나치는 행동에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안방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 다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아내도 오후 내내 첫째와 그 점에 대해서 씨름을 했다고 한다. 사춘기라, 공부하느라 고생한다고 면죄부를 준 것 같다.
일단 그런 행동에 대해서는 이유 불문하고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잘못을 지적하기로 했다. 아내와 내가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인정하지 않고 반복하면 페널티가 필요했다. 제공했던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아내 같은 경우는 일일이 챙겨주던 과제, 나 같은 경우는 힘들까 봐 주말이면 학원까지 태워주었던 것을 안 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밥도 혼자 챙겨 먹으라고 하려다가 보류하기로 했다.
물론 행동적 제제가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잘못을 했을 때 본인에게 불이익이 있다는 것을 주지 시키고 싶었다. 지금 상황이 스트레스를 풀 때도 없고 힘들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하는 점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주로 운동으로 풀었었다. 친구들과 축구나 농구를 하며 끓어오르는 열을 식혔다. 다행히 이번 주 토요일부터 친구와 방과 후 배드민턴을 하기로 했단다. 첫째가 먼저 하고 싶다고 했다니 반가웠다. 일주일에 하루지만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면 분명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아내는 상담을 받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나도 좋다고 했다. 부모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감정 해소도 하고, 더불어 우리도 제삼자를 통해서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좋은 기회였다. 물론 첫째가 동의를 해야 한다. 아내가 물어보기로 했다. 반발이 예상되지만, 개인적으로는 꼭 받았으면 좋겠다.
지금 시기가 무척 중요하다. 가족 모두 힘들지만, 함께 고민하며 힘을 모으면 분명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나도 평소 농담처럼 했던 말을 조심해야겠다. 거슬리는 말을 하면 상대방 이마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면 좋으련만. 이제는 농담도 함부로 못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