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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Sep 17. 2021

오늘은 연가 중

좋아하는 책을 마음 껏 읽어야지.

이번 추석은 왠지 직원 간 눈치 싸움을 하게 만들었다. 다음 주 연휴가 수요일까지여서 목, 금까지 이어서 연가를 내면 한주를 온전히 쉴 수 있었다. 업무 특성상 모두가 연가를 낼 수 없고, 미묘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던 차에 다음 주 금요일에 출근할 일이 생겼다. 조정은 가능했지만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 직원들도 있고 해서 나는 출근한다고 선언했다. 다들 내색은 안 했지만 기뻐하는 표정을 감출 순 없었다. 대신 오늘 하루 연기를 내기로 했다.


아침에 알람이 울렸다. 새벽 글쓰기 시간이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하면서 다시 잠이 들었다. 그간 쌓였던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풀린 듯 정신을 못 차렸다. 다시 눈을 뜨고 보니 아내가 옆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전 치료가 취소되어 오후에 출근한다고 했다. 괜히 옆에서 치근덕대다 귀찮다며 발차기를 맞았다. 아침엔 몹시 예민해지는 아내이다. 그리곤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내가 운전 중 자고 있어서 얼마나 화가 났다나 뭐라나. 그리곤 또다시 눈을 흘겼다. 이럴 땐 참 억울하다. 요즘 어깨가 자주 뻐근하다고 하길래 열심히 마사지를 해주곤, 이런 남편 없지 하며 생색냈는데, 아내 왈 아내 어깨를 주물러주는 자신의 모습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냐는 팩폭을 했다. 그런가....


침대와 몹시 슬픈 안녕을 하고 옷을 입고 외출을 했다. 그간 미뤄둔 보험 청구를 위해서 병원 투어를 했다.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혈압약, 지난번 했던 수면 내시경비, 얼마 전 장염으로 맞은 수액 등등 참 많기도 하네. 늙어가는 하루하루가 괜스레 슬퍼진다.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는 출근했고, 잔뜩 성이 난 둘째만 있었다. 이제 막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쉬고 있었다. 밥 차려준다니깐 바쁘다고 신경 끄라고 한다. 아니 그저 밥을 먹으라는 건데. 밥상만 차려주고 거실에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이제는 첫째뿐 아니라 둘째까지 눈치를 봐야 하다니. 아. 가련한 인생이여.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햇살에 비추인 세상에 감탄을 하던 중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다고 했다. 평온한 심장이 다시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집에 설치해둔 업무 망으로 처리가 가능했다. 자료 작성을 마친 후 메일로 보냈다. 편히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마무리했으니 다행이었다.


뒤늦은 아점을 하고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오후에는 햇살과 함께 그간 고팠던 책을 읽기로 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실시하는 독서 증진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정유정 작가의 신간 '완전한 행복'을 받았다. 나중에 독후감을 제출하는 것은 부담이 되지만, 그래도 책을 받은 것이 어딘가.

그리고 브런치에서 인연을 맺은 애정하는 진아 작가님의 자전적 에세이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이 드디어 어제 도착했다. 워낙 글도 잘 쓰고, 진솔한 이야기를 해주는 분이라 너무 기대가 되었다. 책 안에 얼마나 소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까. 얼른 읽고 서평을 써야겠다.

한 햇살, 시원한 가을바람, 그리고 좋아하는 책.  내 남은 오후는 오롯이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찰 예정이다. 아 참. 애들 밥 먹이고 눈치 보는 것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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