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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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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Sep 24. 2021

오늘부터 1일

인생의 최고점을 만나다.

올라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눈 한번 질끈 감고 네모난 널빤지 위에 올랐다. 실눈을 뜨고 흐릿하게 보이는 숫자를 쳐다보았다. 헉. 살면서 처음 마주한 낯선 존재에 그저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연휴 때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첫째가 옆에 왔다가 잠 옷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배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아빠. 이거 뭐야? 사람 배 맞아? 큰일 났네. 쯧쯧"


부인할 수 없었다. 쉴 새 없이 먹었다. 그리곤 쏟아지는 잠에 곧바로 침대로 향했다. 일명 '먹자'였다. 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더니 풍선처럼 부풀었다. 그 변화는 회사에서도 눈치챌 정도였다. 타 부서 직원과 오래간만에 마주쳤는데,


"와. 계장님, 몸이 좋아지셨네요. 요즘 운동은 안 하시나 봐요."


아닌데. 점심때 산보는 빠진 적이 없는데. 문제는 식탐이었다. 최근에 차 마시는 공간에 각종 간식이 등장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짭짤한 과자가 주를 이뤘다. 점심을 안 먹는 탓에 오후가 되면 배가 고팠다. 그렇게 하나둘 집어 먹었는데 습관이 되어버렸다.


며칠 전에는 김 주임이 내 앞을 지나가다가,


"계장님 과자 많이 드시죠? 지나갈 때 냄새가 많이 나네요. 호호호."


이룬. 마스크를 돌파할 정도라니. 그뿐이 아니었다. 입이 심심한 것을 참지 못했다. 집에 있을 때도 눈에 보이는 족족 입에 넣었다. 아내도 이렇게 간식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여태 몰랐다고 할 정도로 심했다. 밥맛은 왜 이리도 좋은지. 맛없는 음식이 없을 정도였다. 평소보다 먹는 양이 배 이상 늘었다. 더구나 맥주, 와인 등 반주를 꼭 곁들였다. 술맛도 꿀맛이었다. 특히 금요일 퇴근 후 집에서 밥 먹으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은 캬. 말해 뭐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생 몸무게를 마주한 뒤론 살을 빼야겠다는 다짐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우선 간식을 끊어야겠다. 머릿속에서 '맛없다'란 주문을 외우고 손을 대지 말아야지. 그리고 아쉽지만 당분간 금주도 해야겠다. 주말에는 쉰다는 핑계로 하지 않았던 걷기도 해야겠다. 이러다간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 같았다.


그래. 할 수 있어. 당장 시작이야.  오늘부터 1일이야!


ps. 그런데 퇴근 후에 옆 부서 동기랑 밥 먹기로 했는데. 더구나 몹시 소중한 고기인데. 어쩌지..... 내일부터 할까? 아냐 안돼. 정신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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