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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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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Oct 20. 2021

체중계, 너 왜 거짓말해!

자꾸 그러면 코가 길죽히 늘어난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야금야금 내 안에 침투해 곳곳에 달라붙었다. 특히 특정 부위를 집중 공략했다.


어느 순간 이래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가끔씩 던지는 농담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박혔다. 펑퍼짐한 옷으로 가려보아도 소용없었다. 그래 둥글둥글 마음도 둥그런 사람이 되었을 거란 합리화도 소용없었다. 그냥 겉만 둥그러웠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아침은 그대로 선식, 점심은 굶거나 간단한 간식으로 조절했고, 저녁은 그대로 먹되 밥을 반공기로 줄였다. 점심 운동은 산책 대신 등산으로 바꾸었다. 회사 내 간식은 손도 대지 않았다. 더는 내 주변에 과자 냄새난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며칠 전, 김 주임이 나를 보더니,


"와. 계장님 얼굴 살이 홀 쩍 해지셨네요. 요즘 다이어트하세요?"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말로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오늘 아침 체중계에 올랐다. 그것도 공복에 혹여나 해서 잠옷까지 홀딱 벗고.(사실 속옷까지 몽땅)


두구두구. 숫자가 나타나기 전 0.0001초 동안 기대, 설렘이 스쳐갔다. 드디어 결과가 나타났다.


이런 시발라기 xmsjabwhshfksksbeh!! 순간 욕지기가 차올랐다. 품격 있는 중년을 꿈꾸며, 욕을 구석탱이 서랍에 넣어 굳게 잠갔었다. 이성을 붙잡으려 노력해 보아도 소용없었다. 네모난 물건을 입에 넣어 잘근잘근 씹어 부숴버리고 싶었다.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다. 억울했다. 나 무지 노력했는데. 이제 배불뚝이 중년 아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빠진 볼살은 어디 도망가지 못하고 다른 곳을 찌웠다.


실망감에 모두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아침에 선식 대신 냉동 만두 두 개를 먹었다. 소심한 복수였다.


그래, 아직 포기는 이르다. 한 달만.... 한 달만 더 노력해 보자. 그때도 변함없다면 깨끗이 내려놓고 편히 먹고 지내자고.


애꿎은 체중계만 한참 노려보다가 서둘러 출근 준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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