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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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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02. 2021

월요일 출근길, 그림을 그리다.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부유한다.

귀에는 스티브 원더의 'for your love'의 잔잔한 전주가 흘러나올 때쯤, 한 무더기의 인파에 휩쓸려 4호선 환승 구간으로 밀려 나왔다.


한정된 통로에 넘치는 사람들은 겨우 내 몸이 지나갈 공간을 허락했다. 평소의 반도 안 되는 보폭으로 더듬거리며 나아갈 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나 모르겠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사실 요즘 머릿속은 빈 상자갑 같다. 이미 정해 놓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소비한다. 벌여 놓은 일은 많기에 그걸 처리하기에도 정신없긴 하다.


실상 나쁘지 만은 않다. 생각의 고리에 갇혀 답도 없는 문제에 시달리지 않아 마음은 편하다. 다람쥐가 통 안에서 열심히 페달을 돌리 듯 그저 내 앞의 문제에만 집중하면 되니깐.


슬며시 공허함이 고개를 내미는 것은 내가 의미를 찾는 미련한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무언가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미 그려진 선에 물감을 채우는 일 말고, 새로운 스케치 말이다.


그것이 화려하든, 초라하든 상관없다. 생각의 지령을 받아 열심히 손이 그려내는 선의 미학에 취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간다. 그리곤 의미라는 숨을 마지막에 불어넣으면 완성이다.


아직 모르겠다. 현실의 평온함을 미뤄낼 자신도 없다. 나는 왜 머무를 수 없는 사람인지 원.


부유하는 무엇들로 혼잡할 때 멀리서 다가오는 번쩍이는 파란 불빛에 놀랐다. 마치 쓸데없는 생각 말고 열차나 타라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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