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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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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Sep 13. 2019

버스에 삶을 싣고.

덜컹거리는 버스 바닥의 진동은 내 엉덩이를 타고 뇌까지 주기적으로 흔들었다.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참아내야 했다. 왼쪽 의자에 앉는 할머니의 거대한 보따리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고약한 냄새가 버스 특유의 냄새와 합쳐져 내 멀미를 부추기고 있었다. 식은땀이 미간을 타고 턱 밑까지 내려왔다.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뽕짝 메들리는 지친 사람들의 표정과는 다르게 지나치게 촐싹거렸다. 자리를 잡지 못해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 나처럼 아예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좌석에 앉은 사람, 서 있는 사람, 바닥에 앉은 사람 등 버스 안은 조그마한 숨구멍조차 내주지 않았다. “끼익.” 갑작스레 버스가 급정거하였다. 순간 내 뱃속에서 채 소화되지 않는 어떤 것이 뿜어져 나왔다. 참을 수 없었다. 이를 꽉 다물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검은 봉지를 잡고 내 입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어머니의 모습과 놀란 사람들의 표정이 한데 어우러져 버스 안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내가 태어나서 버스에 대해 갖는 첫 기억은 이렇게 평생 지우고 싶은 과거로 남았다. 그날은 지방에 계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와 둘이서 친할아버지 산소에 갔던 날이었다. 우리 집에 승용차가 생기기 전까지 매년 내가 겪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중학교 때까지 집 근처 학교에 다니느라 버스 탈 일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도 집에서 10분 거리 내에 있어서 당연히 그곳으로 배정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중학교 졸업할 무렵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남자 고등학교 한 곳이 신설되었다. 그래서 우리 중학교에서 무더기로 남학생들이 그곳으로 배정되었다. 그 학교는 걸어서는 30분이 걸렸고 버스로는 세 정거장이었다. 이때부터 통학 전쟁이 시작되었다.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학생들로 인해 버스 안은 콩나물 시룻자루 같았다. 버스 계단까지 사람들로 꽉 찼고. 손잡이를 잡지 못해 버스가 설 때마다 사람들은 춤을 쳤고 팔이나 발이 꼈는지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밖에서 보면 꽤 재밌었을 장면이었지만 안에서는 말도 못 할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지옥 버스 타는 것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만원 버스임을 이용하여 회수권을 직접 그리는 예술가, 접은 것처럼 보이도록 반을 찢어서 내는 얌체족도 생겨났다. 몇몇은 버스 운전기사분께 걸렸고 학교까지 알려져 선생님께 모진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나도 2학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버스 타는 것을 포기했다. 아침 시간을 좀 더 일찍 일어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20살이 넘을 무렵부터 버스는 통학 이상의 것을 나에게 주었다. 특히 군대 제대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미래에 불안했을 때,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꺼운 파카를 겹겹이 입은 것처럼 갑갑한 마음을 달래고자 무작정 버스를 탔다. 갈 곳도 모른 체 눈에 보이는 버스에 몸을 싣고 길을 나섰다. 창문을 활짝 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하며 낯선 풍경, 낯선 사람을 지나쳤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그렇게 머물고 돌아오면 마음속 응어리가 풀렸다. 그리고도 한동안 나의 버스 유랑은 계속되었다.

지금도 나는 버스를 탄다. 집 앞에 6625번 버스가 있는데 지하철역까지 바로 간다. 회사는 차를 운전해서 가나 대중교통으로 가나 대략 30분 남짓 걸린다. 그래서 특별한 날이 아니고선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회사에서 집에 오는 길도 지하철역에 내려서 5분 정도 걸어오면 되지만 굳이 기다렸다 6625번 버스를 타고 온다. 집 앞에 바로 내려주는 유혹을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우산도 필요 없다. 아내와 나는 그 버스를 농담처럼 마약 버스라 부른다.

이제 나에게 버스는 어릴 때 흑역사도, 지옥 버스도, 유랑 버스도 아니다.

출근길에는 조금 밝은 음악을 들으며 블로그 글을 보는 설레는 공간이다. 퇴근길에는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창문을 살짝 열고 불어오는 바람에 그날을 정리하는 공간이다. 버스는 어느덧 삶의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버스는 여태껏 정해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나를 인도했다. 하지만 나는 버스를 잘못 타고, 중간에 내리기도 하면서 다른 길을 헤맸다. 이제는 버스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 보아도 좋지 않을까.

오늘도 버스는 달린다. 나를 싣고 삶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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