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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r 19. 2022

3월의 크리스마스

그 문장만으로도 낭만적인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온라인 매일글쓰기 멤버 중 한 분이 자녀 소통에 관해서 미니 강의를 해주기로 한 날이었다. 실제 현장에서 청소년 상담을 하는 분이라 기대가 많이 되었다. 전날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다가 늦게 자서 못 일어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새벽 6시 정각에 눈이 떴다.


강의를 들으며 아이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관한 실질적인 내용이 가득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른 시각임에도 줌 화면에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며 자녀와 잘 지내보고픈 부모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에 어릴 때 부모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잘 기억해서, 우리 아이에게 꼭 해보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떠오려보니 나는 말보다는 잘못했을 때 나무라지 않고 그냥 폭 안아주길 바랬었다. 나중에 꼭 실천해보리라 다짐했다.


잠시 침대에 누워 피곤을 달래던 중 카톡 알람이 울렸다. 문경에 계신 장모님이 사진을 보냈는데, 열어보니 하얀 눈으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맙소사. 불과 얼마 전에도 포근한 봄이 찾아와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들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실로 달려가 커튼을 열었다.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카톡 사진을 열어 눈 세상을 펼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가끔 이렇게 예기치 않은 상황이 주는 행복이 있다. 삶이 예측대로 흘러간다면 재미없지 않은가. 만약 여기에도 눈이 왔다면 둘째를 데리고 신나게 눈싸움과 눈사람을 만들었을 것이다.


오후엔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벽부터 무척 바쁜 날이었다. 함께 읽은 책은 김만중의 '구운몽'이었다. 고전이 좋은 건 시대를 초월해서 마음에 닿는 이야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래된 책을 통해서 각자의 생각의 나누고, 꿈과 미래로까지 사고를 확장했다. 마침 책이 주는 메시지가 요즘 나의 고민과 닿아 깊은 울림이 있었다.

독서 모임을 마칠 때쯤 둘째가 찾아왔다. 편의점에 가서 캐러멜을 사달라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가야지. 하늘 같은 따님의 명령인데. 옷장에서 겉옷을 꺼내렸는데, 아내가 뒤에서 날이 추우니 패딩을 입고 가라고 했다. 그때 찾아온 생각,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하지만 말 잘 듣는 남편이 되기로 마음먹었기에 따랐다. 옷장 깊숙히 놓았던 옷을 다시 찾아 입었다.


밖으로 나가니 구석구석 찬바람이 온몸에 차고 들었다. 아내 말처럼 날이 추웠다. 옷 깃을 여미며 얼른 편의점에 들러 캐러멜을 사 왔다.


느닷없이 3월에 눈과 패딩을 만났다. 봄이 찾아온 것이 몹시 샘 이난 겨울의 질투이려나. 그래도 덕분에 지나간 크리스마스가 다시 마음속에 떠올랐다.


3월에 크리스마스. 그 문장만으로 낭만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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