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중2 아들과 침대에 누워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았고, 아들은 유튜브 삼매경에 빠졌다. 각자의 세상에 충실하던 중 잠시 현실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아들의 학교 생활로 흘렀고, 순간 얼굴을 잔뜩 찌푸리더니 "세상이 모두 멸망하면 좋겠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정신이 번쩍.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아빠. 공부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나중에 대학도 가야 하는데, 자신도 없고. 취업은 또 어떻게. 집은 구할 수 있을까?"
"무슨 소리야. 당연히 가능하지. 아빠보다 훨씬 잘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마."
"몰라. 나는 솔직히 아빠보다, 잘 살 자신이 없어."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쿵 하고 주저앉았다. 이제 겨우 15살 아이에게 나온 말이 아빠보다 잘 살지 못할 거 같다는 거라니. 무언가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떠오르는 생각이 없어서 그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어릴 적엔 "부모님처럼 살지 않겠다"였는데
▲ 고민 가득한 아들의 모습 중학생임에도 벌써 대학, 취업, 집 걱정을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 Unsplash
생각해보면 그 말은 나도 어릴 때 많이 들었었다.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해서 공부를 더 하지 못했던 어머니는 그 한을 자식에게 풀려고 하셨다. 귀에 인이 박이도록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라"는 말을 했다. 어머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은 은연 중에 내 안에 저절로 심어졌다.
그때는 반드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인지에 관한 고민도 할 새도 없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편 막연히 그럴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삶을 핑크빛으로만 바라본 순수하던 시절, 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물론 수능 시험을 망치고, 바늘처럼 좁은 취업문에 좌절하고 나서는 금세 현실을 직시했지만. 그래서 한창 꿈 꿀 나이에 좌절하고 절망부터 하는 아들의 모습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중2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은 그렇게나 희망이 없는 것일까.
아들은 내가 어릴 때보다 이른 시기에 훨씬 많은 시간을 공부에 쏟고 있다. 그런데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지 걱정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의문이다. 물론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예전처럼 대학에 못 가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수도권 소재 대학 진학률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하지 않나. 분산되지 않고 집중됨으로써 아이들은 더욱 치열한 경쟁 속에 놓이게 된 셈이다.
취업은 또 어떤가. 젊은 사람들 대다수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현실은 그저 한숨만 나온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은 예년에 비해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떨어졌고, 취업이 아닌 창업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젊은이들이 늘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통계청 중소기업부의 조사에 따르면, 창업 5년 차에 이르면 2/3 이상이 폐업에 이르게 된다고 하니 그 틈바구니에서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취업 실패로 인한 청년층의 우울증 증가라든지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청년 고독사가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멀지 않은 시기에 사회 생활을 하게 될 아들 세대에서는 더 큰 문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들은 과연 '나혼자' 살 수 있을까?
▲ 희망이 보이지 않는 청년 요즘 청년 세대를 바라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 Unsplash
지난해 서울을 떠난 2030세대가 7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자발적 이동이 아니라 치솟는 집값에 떠밀려 나가거나, 부모님이 서울 밖으로 이사하면서 함께 떠난 경우였다. 물론 다른 지역에 직장이 있어 그곳에서 터를 잡고 생활한다면 걱정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장시간을 도로 위에서 버려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중에 아들이 결혼해서 집을 떠나 독립했을 때 이런 살인적인 집값 앞에서 방 한 칸이라도 제대로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부모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도 내 노후를 생각하면 그마저도 언감생심이다.
아들의 폭탄선언을 듣고 냉정하게 현실을 짚어보았더니 긍정보다는 부정으로 마음이 기운다. 그 말이 몹시 이해되면서, 아들이 정말 나만큼이라도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저절로 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점차 그 심각성을 깨닫고 청년층을 위한 생활안정 지원이라든가, 일자리 확충 및 창업 지원 등 다양한 정책들이 수립되어 실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소수가 아닌 다수가 더 많은 혜택을 받고, 희망을 갖고 살길 바랄 뿐이다.
언젠가 아들이 아빠만큼 아니 아빠보다 나은 삶을 살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그런 세상이 이루어지기 위해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해 봐야겠다.
오마이뉴스 '사춘기와 갱년기' 여섯번째 기사를 발행했습니다. 우연히 아들과의 대화에서 큰 충격을 받았네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한 미안함도 컸고요.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 더 나은 세상이 오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