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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26. 2022

시시콜콜 책 이야기하는 밤

책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하기

얼마 전 SNS에서 공지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이 심야책방 '시시콜콜 책 이야기하는 밤'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실컷 책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는 소개 문구에 마음 한구석이 꿈틀거렸다. 자세한 일정은 올해 읽은 책을 결산해보고, 그중에서 각자 선정한 '올해의 책'을 블라인드 북으로 포장해서 서로 교환하는 '책 마니또' 시간으로 채워졌다.

마침 시간은 금요일 저녁 7시 반부터였다. 장소는 서울대입구 근처에 있는 북카페 '자상한 시간'이었다. 정시 퇴근 후 출발하면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신청을 하려면 올해의 책을 선정하고 그 이유도 간략히 적어야 했다. 독서모임 덕분에 매달 책을 읽고는 있었지만 그중에서 단 한 권을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간 읽었던 책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하나하나 매력 가득한 내용은 결정 장애를 유발했다. 어떡하지. 주저하다 결국 직관을 따랐다. 그냥 마음이 끌리는 내가 책을 고르는 방법이었다. 비밀 댓글로 개인 신상과 선정한 책 그리고 이유를 작성한 후 신청을 완료했다.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가을이 못내 아쉬워 떠나지 못하고 곳곳에 미련의 자국을 뿌렸다. 사각사각 발 밑으로 들려오는 낙엽소리를 들으며 길을 나섰다. 오늘 소개될 책과 참여할 사람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번화가를 지나 조금은 한산한 골목을 오르니 어둑한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자상한 시간'이 보였다. 크게 한숨을 들이마시고 책방 문을 열었다.

자상지기는 밝은 미소로 반겨주었다. 널따란 책상 위에는 파란색 포장지로 감싼 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표지에는 소개 문구가 적혀있었다.


"자기 책을 찾아서 그 앞에 앉아 주세요."


두리번거리다 간신히 자리에 앉았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인지 자리가 모두 채워지지 않았다. 차가운 음료를 주문하곤 뻘쭘하니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하나 둘 자리가 채워지고, 정시가 되자 자상지기는 시작을 알렸다.

"제가 마니또 종이를 준비했으니 뽑힌 분은 앞에 나와서 간단히 자기소개와 고른 책에 관한 선정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마치면 종이를 뽑아 주시고, 해당되는 분은 나와서 책을 전달받은 후 포장지를 풀어서 모두에게  소개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본인이 고른 책을 설명하면 됩니다."


앞에 나와야 한다고? 더구나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말을 해야 한다고?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자상지기가 가장 먼저 뽑았는데 다행히 내가 아니었다. 처음 시작한 분도, 그다음 분도, 그리고 다다음 분도 얼마나 말을 잘하던지. 미리 준비하고 연습한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화술에 애간장이 타기도 했다.


그리곤 내 순서가 되었다. 내가 받은 책은 그림책 '도롱뇽 꿈을 꿨다고?"였다. 마침 아이들과 독서 모임 할 책을 고르던 중이었는데 잘 되었다. 고마움을 전하고 딱딱하게 굳은 입술을 열었다. 이럴 땐 긴장을 풀기 위해 어설픈 유머가 필요했다. 도롱뇽과 그림책을 좋아하는데 잘 되었다는 첫마디에 마음씨 좋은 분의 미소를 보며 안정을 찾았다.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 놀라며 어찌어찌 소개를 마쳤다. 다행히 내가 고른 책은 딱 맞는 분에게 돌아갔다.

1부 순서를 마치고 잠시 쉼을 가지라는 자상지기의 말에 다들 앞에 놓은 책을 읽기 바빴다. 누가 책 좋아하는 사람들 아니라고. 나고 궁금한 마음에 책을 펼쳤다. 왼편에 짤막한 글과 오른편에는 크로키 느낌의 몽환적인 그림이 있었다. 무언가 할 이야기가 많은 책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2부 순서가 시작되었다. 각자 올해 읽은 책을 정리하고, 내년도 독서 목표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책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책에 소개된 음악까지 수집하는 분,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모두 읽는 것이 삶의 목표인 분, 세계 각국 작가의 책을 읽는 분, 다양한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분 등등 모두 범상치 않았다. 나는 카톡으로 그들이 소개하는 책을 열심히 기록했다.


나는 올해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 읽었던 책과 앞으로의 독서 목표를 이야기했다. 책도 책이지만 독서 습관을 바꾸고 싶었다. 전에는 한번 읽으면 끝까지 완독 했는데 요즘은 계속 끊어 읽기를 반복하고 있다. 핸드폰도 가장 큰 방해꾼이었다. 몰입해서 확 들어오지 않으니 얕은 독서가 되었다. 내년엔 기필코 예전의 독서 습관을 다시 찾으리라.


어느새 두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늘 느끼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책의 깊이에 놀라고 자극받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내 안에 충만함이 가득 찼다. 책으로 마무리하는 한 해, 생각만으로도 로맨틱한 일을 직접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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