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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07. 2022

부고와 애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새벽의 적막을 깨는 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흐릿한 눈으로 불빛을 찾아 간신히 핸드폰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실배야. A 아버지가 조금 전에 돌아가셨다."


그 소리에 놓았던 정신이 들었다. 잠결에 들어온 급작스러운 소식에 어떤 말을 나누었는지도 모른 채 장례식장만 간신히 기억했다. 전화를 끊고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저 살아오면서 두세 번 보았을 A의 아버지였다.  


다음 날 아침 친구들과의 카톡방에 A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올라왔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과 몇 시쯤 갈 거라는 시간이 오갔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퇴근하고 저녁 7시나 8시가 돼서야 모두 모일 수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날은 꽤 쌀쌀했다.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기분 탓인지 더욱 날이 을씨년스럽게 다가왔다. 지하철에 도착해 한참을 마을버스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정거장 앞에 택시가 서더니 장례식장을 가냐며 어서 타라고 했다.


가는 길에 기사 아저씨는 그 짧은 시간에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코로나 이후 버스 이용객이 줄어서 배차 간격이 20분이 넘는다고 했다. 병원 입구까지는 가깝지만 장례식장까지는 멀어서 몇 번 와본 사람은 모두 택시를 이용한다고 했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장례식장을 오갔다는데 그 말이 페부에 깊숙이 박혔다.


문을 열고 들어가 커다란 화면부터 바라보았다. 먼저 친구의 성과 일치하는 고인을 찾았고, 가족란에 이름을 발견하고는 몇 호실인지 확인했다. 혼자 가기 그래서 친구 B에게 연락했더니 입구에 다 왔다고 했다. 잠시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5분쯤 지났을까. 기다란 계단을 무거운 얼굴로 내려오는 친구가 보였다.


부의를 하고 조문장에 들어서니 덤덤한 표정의 A가 우리를 안내했다. 짙은 향내음이 코를 찔렀다. 고인에게 절을 하며 짧게나마 좋은 곳으로 가길 마음속으로 읇조렸다. 식당으로 가던 중 A가 손을 꽉 쥐었는데 마치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같이 먹자는 말에 손을 저으며 천천히 하겠다고 했다.


A는 혼잣말을 하듯 아버지의 이야기를 했다. 2년 전부터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계속 물리치료만 받았는데 차도가 없어 나중에 정밀검사를 했더니 췌장암이었다. 발견했을 땐 이미 전이가 많이 진행되었다. 그간 몇 번의 고비를 넘겼고,  얼마 전부터 상태가 악화되더니 결국 폐렴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했다. 간병인을 두지 않고 A가 직접 병간호를 했왔다. 몰랐었다. 그래서였구나. 세 달에 한번 만나는 정기 모임에도 A는 일이 있다며 계속 빠졌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서운했던 지난 순간이 미안했다.


연이어 친구들이 도착했다. 한쪽 구석에 상을 붙이고 나란히 앉았다. A는 중간중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때였다. 낯익은 얼굴 하나가 속하고 식당에 들어섰다. 고등학교 때 친구 C였다. 3년 전쯤이었다. C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서 만나고 만 3년 만이었다. 어색한 듯 두리번거릴 때 다가가 옆자리에 앉혔다. 10대, 20대 시절 자주 만나고, 때 되면 여행도 같이 다녔던 사이였는데 어느 순간 멀어졌다. 근황을 묻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순간에 옛날이야기 만한 것이 있을까. 추억은 긴 시간의 빈 틈을 메꿨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입에서 툭하고 한마디가 떨어졌다.


"어쩌다 우리가 장례식장에서만 만나는 사이가 되어버렸을까...."


C의 텅 빈 눈동자는 말없는 동의였다. 앞으로 종종 보자꾸나. 이러다 영영 연이 끊긴다. 허울뿐인 말일지라도 그래야만 했다. 뭐 바쁘다고 그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을까. 생각나면 언제든 연락하고 만나야겠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으로 향했다. 아내에게 연락이 왔고, 좀 더 있다 가겠다고 답했다. 친구들은 이미 얼큰히 취했다. 조문객은 하나 둘 사라졌고, 텅 빈 식당에 우리만 남았다. A도 이제 자리를 잡았다. 슬플 틈을 주면 안 된다는 강박처럼 연신 A의 술잔을 채웠고, 손님 맞아야 된다며 손사래를 쳤던 전과 달리 마다 하지 않았다. "그냥 정신없이 취하고 싶었어." 마주 앉는 A에게서 나온 말을 나는 들었다. 붉어진 눈시울까지.


새벽 2시가 넘었다. 이제 장례장엔 우리만 남은 듯했다. A는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며 이제는 가라고 했다. 더 있겠다며 버티는 우리 등을 떠밀었다. 비틀비틀 밖에 나가니 차가운 공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서성이던 중 A가 다가와 한 명씩 꼭 안아 주었다. 살과 살이 강하게 부딪치고 손이 서로의 등을 두드렸다.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 강력한 위로이자 고마움이었다.


택시가 도착했다. 몸을 밀어 넣으며 가는 길에 내내 어떤 감정 하나가 내내 머물렀다.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남겨진 A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 그건 진정한 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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