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있었던 북토크의 여운이 깊게 남았다. 늘 시작 전에는 긴장, 불안, 초조가 맴돌지만 끝나고 나면 시원하면서도 섭섭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족 독서모임이 있었다. 전 주에 아이들에게 미리 공지를 했고, 일요일 저녁 우리는 테이블에 모였다.
첫째가 가장 먼저 책을 가지고 왔고, 다음에 둘째가 왔는데 손에 책이 보이지 않았다. 약간 멋쩍은 얼굴로 반납해서 없단다. 독서모임에 책을 가지고 오지 않다니. 다음부터는 꼭 가져오라고 했더니 가르치지 말라며 삐죽거렸다. 사춘기의 아이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옆에서 첫째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지원 사격을 해주었다.
독서모임의 순항을 위해서는 일보 후퇴하는 것이 맞았다. 일단 최대한 둘째의 기분을 맞추려 노력했다. 입꼬리를 한껏 올려 다정한 미소를 만들며. 둘째는 인터넷으로 우리에게 책을 소개해 주기로 했다.
오늘 순서는 나, 첫째, 둘째 순으로 하기로 했다. 나의 책은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였고, 아들의 책은 '변기에 빠진 세계사' 그리고 딸의 책은 '으랏차차 뚱보 클럽'이었다. 딸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주었는데 맙소사 거기에 익숙한 이름이 있었다. 글벗 빨강님의 서평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아이들에게 아는 분이라고 자랑을 했다.
아빠의 책
줄거리
이 책은 평생 요리라고는 라면 정도 밖에 해보지 않은 작가가 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서 요리를 시작한 이야기이다. 책 안에는 짧게 요리 레시피가 담겨 있는데, 이상하게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짠했다. 아마도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넘어 그 안에 작가의 마음이 담겨서 인 것 같다. 소제목들도 '무치는 마음을 담은 나물', '눈처럼 하얀 밥 물과 보리차'등 기발하면서도 묘하게 슬펐다. 작가는 아내를 위해서 건강식을 만들었고, 그때마다 블로그에 글로 기록했는데 그 내용이 모여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최근에 드라마로도 나와서 책에서 상상했던 장면들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질문거리
1. 딸의 질문 : 책에 나온 음식 좀 어떤 것이 가장 인상 깊었나?
- 굴비 이야기를 담은 '굴비 하세요!'가 인상 깊었다. 작가가 글쓰기 수업에서 만나 제자들에게 굴비를 선물로 받는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는데 아내는 그냥 쟁반에 받쳐서 찜기에 넣고 찌기만 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요리를 하고 아내와 아들에게 주었더니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곤 굴비는 뜻을 굽히지 않는 뜻이라 이야기를 해준다. 결국 '굴비 하세요'라는 말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힘을 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작가는 그 말로도 불끈 힘을 얻었다는 장면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상상이 되어 울컥했다. 짧은 에피소드였지만 희망을 잃고 싶지 않은 작가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2. 아들의 질문 : 갈수록 책의 분위기는 어떤가? 그리고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 전체적으로 풀어가는 글의 분위기는 담담하다. 그저 레시피와 그와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의 아내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결국은 죽음에 이루게 되어 무거움이 느껴졌다. 뒷부분에는 혼자 남겨진 작가가 그래도 살기 위해서 이젠 아내가 아닌 자신의 위한 음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그려졌다. 누군가 떠나도 남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 내가 해주고 싶은 요리는 오믈렛이다. 계란과 각종 재료로 볶음밥에 담아내면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된다. 학교로 학원으로 밥 먹을 시간조차 부족할 때 간단히 먹을 수 있고, 또 요즘 교정으로 딱딱한 음식을 씹기 어려운데 먹기에도 부담이 없을 듯하다. 조만간 꼭 해주겠다.
아들의 책
줄거리 '변기에 빠진 세계사'
이 책은 '벌거벗은 세계사', '거꾸로 읽은 세계사' 등과 비슷한 형태의 책이다. 기본적으로 대변에 관한 역사 속 이야기이지만 그뿐 아니라 전염병, 화장실, 동물의 배설물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화장실에 관련한 배변과 화장실 문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각 나라별로 유행했던 질병이나 관련 이야기들을 통해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질문거리
1. 딸의 질문 :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 피에로 만초리라는 행위 예술가가 고가의 예술작품 등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통에 본인의 대변을 넣고 전시를 했는데 그 작품이 무려 한화로 1억 7천만 원에 달했다. 그걸 보며 어이가 없었고, 사람들이 어떤 심리로 그 작가의 작품을 평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작품을 만들고 2년 뒤 작가는 죽었다. 아직까지도 그 통 안에 진짜 대변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둘째는 첫째의 이야기를 듣고,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하더니 오히려 자본주의 그 자체가 되었다며 허를 찼다)
2. 아빠의 질문 :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
-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읽었던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새 똥이 쌓여 만든 물질을 '구아노'라고 부른다. 1900년대 후반에 천연비료로 각광을 받았는데, 어떤 가난한 나라에서 '구아노'가 많이 있어서 그로 인해 나라가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낄 줄 모르고 계속 팔기만 했고,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 대체물질이 발명되면서 급격히 그 나라는 쇠퇴하게 되었다. 그걸 보면서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고 발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딸의 책
줄거리 '으랏차차 뚱보 클럽'
초등학교 5학년인 은찬이는 79kg의 비만이다. 은찬이 엄마도 비포모델로 활동하며 살을 찌기 위해서 안 좋은 음식을 계속 먹고 있다. 우연히 은찬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충격을 받는다. 은찬이네 반에 육상을 하다가 다리가 다쳐 절뚝거리는 예슬이가 전학 와서 짝꿍이 된다. 예슬에게 잘 보이려고 역도를 한다고 했는데, 진짜 역도를 시작하게 된다. 옆에서 철민이 형도 도움을 주었다. 엄마는 은찬이가 역도를 하지 않길 바랐는데 아픈 할머니를 위해 상금을 받기 위해서 역도 대회에 나가게 된다. 체력 훈련도 힘들고 어렵지만 역도를 하면서 점점 은찬이는 성장해 간다.
질문거리
1.아빠의 질문 : 이 책에 담겨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 은찬이는 별명이 십 인분인 것처럼 살이 많이 찌고 놀림도 당한다. 그것이 단점이었지만, 결국 은찬이는 역도를 통해서 장점으로 바꾸었다. 나 역시도 은찬이처럼 단점이라 생각되는 것이 있다. 바로 영어이다. 지금은 영어가 어렵고 잘 못하지만, 꼭 열심히 노력해서 영어를 잘하는 장점으로 만들고 싶다. 누구나 단점이 있지만 그걸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2. 아들의 질문 : 혹시 그 뒤로 예슬이와의 이야기는 없었나?
- 특별히 그 뒤로 예슬이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아들은 둘의 로맨스가 있으면 좋았겠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곤 예슬이를 놀리는 친구들에게 은찬이가 나타가 힘으로 제압하고 그 모습에 예슬이는 반한다. 결국 은찬이가 고백하고 둘이 사귀게 되는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이에 둘째는 아이들이 읽은 책에 오빠가 말한 사랑 이야기를 담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고 하니 첫째도 결국 수긍했다. 요즘 이성에 관한 관심으로 꽉 찬 첫째를 알 수 있었다.)
소감
아빠의 소감 : 질문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서 좋았다. 모두 집중해서 참여해 주어 독서모임이 더욱 풍성했다.
아들의 소감 : 오늘 각자 가지고 온 책이 너무 흥미로웠다. 이런 책만 함께 읽는다면 앞으로의 독서모임이 기대되고 재밌을 것 같다.
딸의 소감 : 책이 재밌어서 몰입해서 독서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아빠와 오빠가 가져온 책 모두 읽어싶다.
북토크에서 다음날 아이와 독서모임을 할 생각에 설렌다고 말했었다. 그 말처럼 이번 독서모임은 그 어느 때보다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참여해 주어 고마웠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진 생각을 잘 표현하는 모습에 이만큼 성장했구나를 느꼈다. 모임을 마치고 아내에게 다시 참여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더구나 여름휴가 때 해외여행을 갈 예정인데 그곳에서 독서 모임을 하자고 먼저 제안을 했다. 주중에 아내가 관련 나라의 책을 빌려오기로 했다. 가족 모두가 함께 읽으며 가고 싶은 곳도 정해보기로 했다.
독서모임도 하다 보면 늘 확장성이 있었다. 우리 가족 독서모임도 어디까지 뻗어갈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저 우주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