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매일글쓰기 카톡방에 글이 하나 공유되면서부터 잔잔한 냇물이 흐르던 공간에 세찬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자녀의 학업 문제로 고민하는 어느 글벗의 글로 인하여 한바탕 토론이 벌어졌다.
이제 곧 고등학교에 들어갈 아이가 학업 말고 다른 길을 선택하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잠시 회의를 다녀온 후 핸드폰을 확인하니 읽지 않은 카톡 수가 100여 개가 넘었다. 하긴 부모라면 누구나 관심 가질 민감한 주제였으니 그럴 수밖에.
찬찬히 하나씩 읽어가면서 지금 내 아이의 상황에 비추어 보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엄마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단 점이다. 아들이 중학생이 된 후론 내내 학업 문제로 아내와 갈등이 있었다. 좀 더 교육에 집중하려는 아내와 다른 취미 활동도 하며 여유를 갖길 바라는 나는 수시로 부딪쳤다. 정답이 없음에도 우리는 각자의 입장만이 옳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진지하게 오가는 카톡 속에서 지금 아이 시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엄마들이 얼마나 전심을 다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내 안의 생각에 갇혀 보이지 않는 일이 이렇게 제삼자의 눈을 통해 보일 때가 있다. 결국 나와 아내 모두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일맥상통했다. 내 생각만 밀어붙이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해야겠다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 매일글쓰기
▲ 매일글쓰기 온라인 모임 벌써 5년째 참여하고 있는 온라인 매일글쓰기 모임 ⓒ 신재호
5년 전 처음 온라인 매일글쓰기 공간을 알게 되었다.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참여 인원이 모두 여성인 공간에 남성인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주저했다. 하지만 그 당시 글을 쓰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절박한 심정에 그 공간의 모임 장에게 조심스럽게 연락했다.
"제가 매일 글쓰기에 참여하고 싶은데, 남자도 참여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오히려 서로의 생각을 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함께 해요."
모임 장의 넉넉한 마음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30여 명의 구성원 중 청일점이 되었다. 첫 글을 발행하고 불안했다. 혹여나 내 글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글벗을 마음에 생채기를 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되었다.
남편, 사위, 아빠로서 바라본 시선이 아내, 며느리, 엄마에게는 불편할 수 있겠단 생각 때문이었다. 걱정은 기우였다. 일부러 찾아와 정성스레 응원의 댓글을 남기고 오히려 남편 입장을 알게 되었다는 말에 힘이 났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구나 회사 동료 대다수가 남성이었다. 물론 여성 동료도 있지만 속마음까지 터놓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매일글쓰기에 공유되는 글을 읽으며 다름과 차이를 넘어 깨달음을 얻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별, 나이 등의 차이는 점점 옅어지고 글을 좋아하는 글벗으로서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삶 속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이제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주제에 관해서도 그간 쌓인 신뢰감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홍승은 작가의 에세이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중에서 쓰는 사람은 '특별하게 관계 맺는 사람'과 같은 말이라고 정의했다. 누군가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애정 어린 관심을 두는 일을 통해서 글에서도 숨이 붙는다고 했다.
그런 의미로 매일 글을 통해서 서로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때론 내 삶에 비추어 보며 힘들 땐 따스한 위로를 보내고, 기쁠 땐 한가득 축하를 보내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글에도 한가득 숨을 불어 넣으면서.
워낙 글에 진심인 분이 모인 공간이라 다양한 정보가 수시로 오갔다. 공모전이나 좋은 북토크가 있으면 세세한 일정까지 공유했다. 브런치를 포함 다양한 글 쓰는 플랫폼도 알게 되었고, 모임 장의 권유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도 하게 되었다. 월간 이슬아를 벤치마킹한 메일링 구독 서비스에도 도전하면서 내 안으로만 향했던 글이 점차 밖으로 향해 나갔다.
얼마 전부터 매일 글쓰기 방에 반가운 남성 동지들이 하나둘 함께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를 포함해서 4명의 남성이 참여하면서 청일점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처음에 내가 그랬듯 뻘쭘함에 그만둘까 봐 열심히 찾아가서 댓글도 달고 소통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진입한 듯 보여 다행이다.
그중 한 분과 최근에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어색할 거란 우려와 달리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처음부터 편했다. 글을 통해 매일 만난 힘이었다. 그 흔한 주식, 코인, 골프 없이 오롯이 글에 관한 이야기로 집중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 그분 또한 매일글쓰기를 통해서 아내와 아이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며 참여하길 잘했다는데 나와 같은 마음이라 반가웠다. 그건 시사하는 바가 컸다.
혐오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들
강원국 작가의 <결국은 말 입니다>를 읽으며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다.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만연한 사회를 안타까워하며 해결 방법으로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를 구축해야 함을 강조했다. 더불어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제삼자의 측면에서 보려는 노력이 중요했다.
그 말이 매우 공감이 되었다. 특히 요즘 남성 혐오나 여성 혐오란 말로 서로 간에 벽을 치는 작금의 사태가 우려되었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이렇게 갈등이 고조되고 심지어 심각한 범죄까지 벌어지는 상황이 무섭기까지 했다. 조금만 상대방을 이해하는 노력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의미로 새로운 시각을 바라보게 해준 매일글쓰기가 더욱 감사했다. 내 안에 머물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생각의 지평을 활짝 넓혔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매일글쓰기에 참여하며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려 노력해 나가려고 한다.
지난 주말 아들과 동네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 말을 들으며 문득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매일글쓰기 방에서 함께 쓰며 미처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 걸 글로 나누며 서로를 좀 더 깊게 이해하고 더불어 아들 역시도 생각의 크기가 한 뼘 성장하는 모습을. 한낱 꿈에 그칠지 모르지만, 한번 꼬셔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