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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l 18. 2023

회사는 안 까먹고 다니네

공포가 엄습해 오는 이유

어제저녁에 약속이 있느라 퇴근하면서 이어폰을 회사 책상 위에 두고 왔다. 늘 습관적으로 이동할 때 음악을 들었는데 없으니 무척 허전했다. 오늘 출근하면 떡하니 있겠지.


깜빡 증세가 심해지는 요즘이다. 주말에도 아내가 장을 보고 오라며 요플레, 우유, 감자, 과일, 쓰레기봉투 2리터를 내 카카오톡 메시지에 남겼다. 마트에 가서 하나씩 잘 사서 집에 돌아왔더니,


"쓰레기봉투는?"


아내의 말에 아뿔싸. 역시 네가 그렇지란 표정에 어쩔 줄 몰랐다. 고작 다섯 가지도 챙기지 못하다면서  어떻게 회사는 다니는지 신기하다는 말에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내 나름의 깜박 증세를 만회하는 전략이 있으니 그건 정해진 장소에 필요한 물건을 놓아두는 것이다. 거실 책장 밑에서 두 번째 칸이다. 시계, 사원증, 지갑, 차 키 등등 아침이 되면 자연스레 손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아주 가끔 정해진 자리에 물건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땐 초비상이다. 특히 출근길에 이러면 온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느라 난리가 난다. 손과 발이 열 개라도 되는 듯 찾으면 나타난다.


가방 안에 있다든지 혹은 식탁 위 어떨 땐 화장실 세면대에서도 발견한다.


분명 정해진 루틴이 있는데 왜 거기서 발견되지? 하면서 어리둥절한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답이 내 안에 있다.  분명 전 날 술에 취해 아무 데나 놓았든지, 잠시 쓴다고 꺼냈다가 그대로 두었으리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회사로 가는 길은 진이 다 빠진다. 한편 앞으로 점점 더 깜박 증세는 심해질 텐데 어찌 살까 하는 공포가 엄습해 온다.


솔직히 고백하면 얼마 전엔 아파트 출입문 비밀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헤맸다. 수백, 아니 수천을 눌렀을 번호를 잊다니.


기다리던 이웃의 따가운 시선을 뒤에서 받으며 간신히 떠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나마 아는 얼굴이라 수상한 눈초리를 피했다. 그게 더 이상한가.


아무리 실드를 치려 해도 안 되네.  나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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