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였다.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지학사에서 운영하는 '엄빠공감'블로그에서 '나의 엄빠일지' 인터뷰 시리즈 진행을 맡은 편집자님의 인터뷰요청이었다. '나의 엄빠일지'는 엄마와 아빠로서의 삶과 나의 삶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양육자들의 이야기를 담는 인터뷰 콘텐츠였다.
지학사는 참고서나 교과서를 만드는 곳으로만 알고 있는데 이런 콘텐츠를 운영하고 있었네. 편집자님은 자기소개에서 전에 <오마이뉴스>에서 편집 기자 활동하다가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는 중이고 오마이뉴스 측에 아빠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을 소개 부탁했더니 나를 추천했다고 한다. 평소에 브런치를 통해서 종종 내 글을 보았다는데 누굴지 궁금했다.
<아빠의 가족 독서모임 만드는 법>도 읽었고, <오마이뉴스>에서 '중년의 삶'을 주제로 그룹기사를 쓴 내용도 보았다고 했다. 아빠로서 또 40대 직장인으로서 어떻게 아빠의 삶과 나로서의 삶을 조율하고 있는지 진솔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단어나 문장 하나하나에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꼭 말하고 싶은 주제였다. 곧바로 인터뷰를 하겠다는 답을 보냈고, 직접 통화를 했다. 인터뷰 날짜는 8월 둘째 주 금요일 저녁으로 잡혔다.
지난 수요일쯤 인터뷰 목록이 도착했다. <가족 독서모임>에 관한 질문 아홉 가지, <나>에 관한 질문이 열한 가지였다. 그 내용을 보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한 달의 시간 동안 편집자님은 내가 출간한 책, 블로그, 브런치, 오마이뉴스 기사까지 꼼꼼하게 읽고 질문을 보낸 것이었다.
언젠가 나도 인터뷰를 하고 싶은 꿈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선 그 사람에 관해서 이렇게나 많이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구나를 배웠다. 그날 저녁에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해보았다. 마흔 이후 책과 글을 만나고 가족 독서모임까지 이어진 그 긴 여정이 두 장의 종이에 모두 담겼다.
드디어 당일, 아침부터 정신없이 일이 쏟아졌다. 무언가 계획한 날에는 이상하게도 늘 바빴다. 1분도 쉬지 못하고 퇴근 무렵이 다 되어서야 겨우 키보드에 손을 뗐다. 가만있자. 어디였더라. 그제야 장소를 다시 확인했다. <서사, 당신의 서재>란 곳이었다. 이름도 참 멋스럽네.
회사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다. 서둘러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와 정류장으로 뛰었다. 사실 태풍이 올 때라 전날 인터뷰를 미룰까 말까 편집자님과 연락을 했었다. 다행히 비껴갔고, 조금 궂은 날씨지만 그게 어딘가 싶었다. 첫 번째 버스를 타고 내린 순간 바로 앞에서 갈아탈 버스가 이제 막 출발했다. 이런 머피의 법칙이 있나.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택시를 타야겠다란 마음을 먹고 카카오 T를 불렀다.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을 지나서 드디어 책방에 도착했다. 부슬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면 한옥집 같은데 안에 들어가니 카페 겸 서점이었다. 그곳엔 인상 좋은 편집자님과 예술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진기자님이 있었다.
사진기자님을 따라 음료를 주문하고 안쪽에 널따란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일단 밖이 예쁘니 사진 먼저 찍죠."
미쳐 답을 하기도 전에 밖으로 이끌려 갔다. 기자님의 요청에 따라 조명 옆에도 서보고, 계단에도 앉아보고, 자연스레 걷는 상황도 연출에 보았지만 어색해서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갈수록 사진 찍는 일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며 힘을 주는 목소리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공간에서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편집자님은 준비한 질문을 그대로 묻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살을 붙여 자연스럽게 답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어 주셨다. 그래서 나 역시 미리 작성한 답을 넘어 훨씬 풍성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제 막 만났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했다. 적절히 묻고, 경청하며 때론 추임새도 넣는 다년간 쌓은 인터뷰의 기술이었다.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요 근래 이렇게 즐겁게 대화한 적이 있던가. 회사에서 쌓인 피로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엔 좋은 기운만 남았다. 가족 독서모임에 관한 이야기,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삶, 직장인 그리고 마지막 '실배'라는 부캐까지 한바탕 신나게 말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가는 길에는 제법 빗줄기가 굵어졌다. 얼른 사진기를 꺼내 밖의 풍경을 담았다. 편집자님께도 말했지만, 꼭 다시 오고픈 공간이었다.
사진기자님이 인근 지하철역까지 태워주셔서 편하게 올 수 있었다. 편집자님께서 인터뷰는 9월호에 실린 예정이라니 한 움큼 기대를 품고 기다려보아야겠다.
인터뷰를 하며 인터뷰에 관해서 배울 수 있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애써준 편집자분과 사진기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나의 엄빠일지'란 블로그 내용이 참 좋아서 공유해 봅니다. 9월호에 제 인터뷰가 실리면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