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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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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02. 2019

나에게도 동백꽃 필 무렵이 있었다.

얼마 전 회식 때 아재 동료들이 드라마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동백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도통 알 수 없었다. 요즘 이 드라마를 안 보면 대화에 낄 수 없다며 나를 밀어냈다. 분했다. 얼마나 대단한 드라마이길래 이렇게 사람을 왕따 시키는지 두고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금요일 퇴근 후 아내에게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사이트 아이디를 받았다. 그 드라마의 정체는 바로 '동백꽃 필 무렵'이었다. 제목이 촌스럽다. 왠지 386 감성이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배우는 평소 좋아하는 공효진과 강하늘이 나왔다.


극 중 주인공의 엄마로 나오는 고두심 씨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옹산'이라는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 미혼모 동백이가 술집을 차리면서 한바탕 폭풍이 불어닥친다. 그 와중에 동네로 전근 온 순경 용식이가 우연히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직진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거기다 미스터리한 사건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높였다. 거참 묘하게 재밌네. 한두 회 보고 말아야지 하다 벌써 10편까지 와버렸다.

나는 용식이의 사랑이 마음에 들었다. 대사 한마디에 왜 이리 가슴이 뛰는지 주책이 따로 없었다. 어떻게 하면 다른 것 보지 않고 오로지 그 사람만 볼 수 있을까. 문득 아내와의 연애 때가 생각났다. 그땐 몰랐고 순수했다. 용식이의 사랑과 결이 같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사랑이 세월에 쌓이고 묻혀 지금에 이르렀다. 불같이 뜨거운 사랑은 점차 향초처럼 은은해졌다. 서로 바라만 보기도 부족했던 시간이 이젠 아이들로 채워졌다. 가끔 뜨거웠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지금 삶이 주는 평온함도 나름 괜찮다.

용식이의 사랑은 그저 내 마음만 표현하는 듯 보여도 중심은 늘 상대방에게 가 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받은 동백이가 조금씩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얻게 된다. 팬심으로 그 사랑을 응원한다. 한편 나도 그런 사람을 꿈꿔본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은 어렵지만, 마음을 계속 갈고닦으면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중년 아재가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여기저기 아재들이 소싯적 자기 이야기라고 말하곤 한다.


나도 그렇다. 나 역시도 동백꽃이 아름답게 핀 그 시절이 분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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