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도 강의 할수 있습니다
'내향인이지만 강의를 합니다' 프롤로그
아직 사람의 숨결이 닿지 않은 텅 빈 공간에 덩그러니 홀로 앉는다. 심장은 주체 없이 뛰고, 그 긴장감을 누르고자 긴 호흡을 한다. 그래도 안되면 일어나 주변을 돌며 서성인다. 초침이 한 바퀴 돌 때마다 낯선 이가 나타나고 난 또 어색한 웃음을 짓고는 이내 시선을 거둔다.
드디어 빈자리가 모두 채워졌다. 무대 앞으로 나갈 차례다. 늘 농담을 세게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몇몇 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게 뭐라고. 두 손안에 가둔 새가 해방되어 훨훨 날아가듯 그제야 몸이 풀린다. 이때부턴 완전히 다른 가면을 쓰고는 마음껏 강의장을 들었다 놓았다를 한다.
나도 헐크처럼 감마선에라도 노출된 걸까. 같은 사람이 맞는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나 자신을 도통 종잡을 수 없다. 애초에 사람 많은 곳에선 늘 구석을 찾는 내향인이 사람 많은 앞에 나와 강의하는 상황 자체가 모순투성이다. 하지만 난 그 일을 벌써 20년째 하고 있다.
꽤 오래전 일이다. 학교에서 학급별 강의를 의뢰받아 여러 강사가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강사 대기실 구석에 대기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나와 달리 유독 놀러 온 듯 밝음을 뽐내는 강사 한 분이 있었다. 강의 오는 것이 전혀 부담 없고 늘 즐겁고 설렌다는 말이 부러웠다. 나도 외향인이었다면 이런 예열 과정 없이 액셀을 밟고 그대로 치고 나갈 텐데. 인간은 늘 가질 수 없는 것이 더욱 탐나고 갖고 싶기 마련이니.
그런데도 이렇게 오랜 기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문강사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임에도 여전히 외부에서 강의를 의뢰하는 수요가 꾸준히 있고, 직장 안에서도 사내 강사로 쓰임 받고 있다. 한 때는 전문강사를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가능성도 엿보았다.
돌이켜보면 내향인이란 강사로선 치명적인 단점이 오히려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울퉁불퉁한 원석을 다듬 듯 부족한 점을 차곡차곡 채워나가 반짝이는 보석으로 만들었다. 타고난 내향성을 감출 수 없어 여전히 시작 전 바들거릴지라도 강의가 진행되면 누구보다 활달한 헐크로 변한다.
언젠가는 그 과정을 기록하고픈 열망이 있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내향인이 강사로 탈바꿈되기까지의 굴곡진 여정을 담았다. 혹여나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가슴에 살포시 희망을 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