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성'은 꽤 오랫동안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사전적 의미로'에너지 방향성이 개인 내부로 향하여 외향성과 달리 외부세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임. 내향성이 큰 사람은 조용하고 신중하며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며 여러 사람과의 관계 형성보다 소수의 사람과 밀접한 관계 맺는 것을 추구함'이란 특성은 어떤 면에서는 같았고, 어떤 면에서는 달랐다.
어릴 때부터 책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혼자 방에서 책을 읽으며 공상하고 사색하기를 좋아했다. 글을 쓰진 않았지만 말보다는 훨씬 나았을 듯하다. 그렇다고 방에만 있지 않았다. 동네에서 다방구, 잡기 놀이에 푹 빠져 있다가 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방과 후에 축구 등 운동에 몰입했다. 자연스레 노는 친구들도 많았고, 대인관계도 활발했다.
내향과 외향이 공존하며 혼재된 상황은 나를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심리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면을 다 가지고 있고, 어느 것이 더욱 강하게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성향이 정해짐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내 안의 내향성을 받아들이고, 가진 장점을 마음껏 누리고 있지만 어린 마음엔 외향적인 사람이 고픈 마음이 컸다. 내 안에 내향성을 감추고자 친구들과 있으면 더욱 과격한 행동으로 활동성을 뽐내려 했고, 어설픈 모험에 앞장섰다. 그런 모습은 꽤나 효과적이라 설정한 이미지대로 비추는 데 성공했다. 다만 위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땐 왜 꼭 일어나서 교과서를 읽게 시켰을까. 그것만 아니었어도 꼼꼼 숨길 수 있었을 텐데... 특히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은 그 아슬한 긴장을 즐겼다.
"가만있자. 오늘 몇 월 며칠이더라. 9월 17일이구나. 그럼 26번 일어나서 책 읽어봐."
선생님의 '가'자란 말부터 심장이 주체 없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휴. 다행이다. 아슬하게 내 앞 번호가 불렸다. 친구가 국어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다음 번은 누가 될지 그게 더 불안했다. 정해진 페이지를 읽고 앉는 순간 선생님은 우리를 두리번거렸다.
"다음 읽을 사람은 누가 좋을까. 그래 뒷자리가 읽어보자."
이런..... 몸을 한껏 웅크려 숨었건만 피할 수 없었다. 크게 호흡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글씨는 흐릿하지, 심장은 이제라도 뻥 터질 듯 부풀러 오르지, 식은땀은 주르륵 흐르고 얼굴은 점점 새빨갛게 변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이 없었다.
"실배야 왜 그래. 어디 아프냐."
"아..... 아닙니다...."
반 아이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간신히 마지막 문장을 읽고 자리에 앉았는데 의자 등받이가 흠뻑 젖은 땀 때문에 착 달라붙었다.
시궁창에 빠져 바들 떠는 생쥐 같은 내 모습에 아이들은 묘한 시선을 보냈다. 대놓고 뭐라 하거나 놀리지는 않았지만,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그들도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럴수록 아무렇지 않은 척해보았지만 이미 배는 저 멀리 떠난 뒤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발표에 걸리지 않길 기도하며 잠드는 버릇마저 생겼다.
긴장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버릴수록 오히려 더욱 긴장되었다. 발표 불안은 학창 시절 내내 옆에 콕 붙어서 나를 괴롭혔다. 스스로 위축되고 자신감도 점점 더 잃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턴 크게 남 앞에 설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럭저럭 잘 버티며 적당한 사람으로 살아갔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잊고 있던 공포가 찾아왔다. 조별로 과제 준비를 하고 수시로 발표할 일이 생겼다. 까맣게 잊고 있던 불안이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궂은일을 도맡는 것이었다.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PPT자료를 만드는 일에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과제 준비하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발표자가 가져갔다. 점수 또한 그들 몫이었다. 화려한 빛 뒤, 어둠 속에 가려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랬던 나에게 뜻하지 않는 곳에서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으니 그건 바로 대학교 2학년 여름 계절학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