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퇴근 무렵 지하철을 내려 집에 가고 있는데 어머니가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속사포처럼 말들을 쏟아냈다.
"어제 덕분에 임영웅 콘서트 잘 다녀왔다. 평생 소원 다 풀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별소리를 다 하세요. 100세까지 사셔야죠. 그런데 그렇게나 좋았어요?"
"말도 마라. 내 평생 그렇게 대접받은 공연은 처음이었다.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더니 푹신한 방석이 있더라고. 이제 나이가 드니 엉덩이 살이 없어서 오래 앉아 있으면 얼마나 배긴지. 방석 덕분에 편하게 잘 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많은 좌석마다 모두 방석을 놨다고 하더구나. 거기다 더 기가 막힌 건, 끝나고 가져가라고 주더라. 어쩜 마음보가 그리 넓은지. 손잡이도 있어서 들고 가기 얼마나 편했는데."
무슨 마력이 있길래 이리도 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았단 말인가. 십수 년 노력해도 안 되는 걸 임영웅은 단박에 해내다니. 부러움, 질투는 궁금증으로 돌변했다.
"그래서 또 뭐가 좋았는데요?"
"화장실은 또 어떻고. 전에는 한참 기다리다가 공연 시간 넘기기가 일쑤였는데, 칸이 많으니 금방 다녀온 거 있지. 내가 칠십 평생 어딜 가보아도 여기보다 화장실 많은 곳은 본 적이 없다. 근데 신기한 건 사람들이 줄도 잘 서고 어찌나 질서를 잘 지키던지. 배려도 이런 배려가 없네."
"공연은 어땠는데요?"
"노래는 뭐 기가 막히게 잘하지. 귀 호강 한 번 제대로 했다. 공연장이 원형이라 잘 안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막상 가보니 커다란 화면이 몇 개나 있어서 이쪽은 물론, 저쪽에서도 잘 보이더라고. 무슨 장치를 했는지 사면에서 다 보여서 눈도 침침한데 편하게 잘 봤다. 임영웅이가 다 배려한 거지. 내가 팬이라서가 아니라 직접 보니 왜 임영웅 하는지 알겠어. 겸손이 얼굴에서 말까지 절절 흐르더라."
"에이. 혼자 했겠어요. 소속사랑 같이 한 거지."
"그런 말 마라. 가수가 의지가 있어야 그런 게 다 가능한 거야."
어느새 집에 다다랐다. 어머니의 끝도 없는 찬양가는 그만 들어야 했다. 전화를 끊을 때쯤 모임에서 만나는 지인분이 매년 임영웅 콘서트를 갔는데, 이번에는 못 가서 어머니를 매우 부러워했다며 내년에도 가고픈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임영웅 콘서트 하나로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 스타가 돼 있었다. 어머니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무한반복할지 안 봐도 뻔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어머니와의 통화 소식을 전하니 나보다 한발 먼저 들었다고 했다. 아내에게 1절을 마친 뒤 곧바로 나에게 2절을 한 것이었다. 아내도 나도 가수 임영웅 팬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찐 후기를 듣고 나니 대단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영웅씨, 참 대단합니다
▲ 임영웅 2022 전국투어 콘서트 < IM HERO > 서울 앙코르 공연 모습.ⓒ 물고기뮤직
나 역시 소싯적에 종종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가곤 했다. 화려한 무대에서 가수가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앙코르를 외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몇 곡을 더 해줬다. 물론 좋아하는 스타가 눈앞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더는 바라는 점이 없었지만. 주인공은 오롯이 가수의 몫이었고, 팬은 그를 응원하는 자리에만 머물렀다. 그 안에서 어떤 배려를 받았을까 생각에 보았지만 크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임영웅 콘서트를 보면서 공연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공연에 관한 후기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임영웅이란 가수가 보여준 따뜻한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해 공연에서 팬들이 화장실에서 길게 늘어서 대기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곤 이번엔 더는 불편하지 않도록 기존 화장실 외에 간이 화장실을 추가로 많이 설치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편하게 보았던 공연장 역시 360도 무대를 공연장 중앙에 설치해서 모든 관객이 어느 각도에서든 볼 수 있도록 배려했고, 대형 스크린도 12개나 설치했다. 임영웅의 모습을 눈앞에서 본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화질도 최상급이었다. 이건 분명 노화로 인하여 눈이 잘 보이지 않은 나이 든 팬을 위함이었다.
심지어 밖에서 노령의 부모가 공연을 다 보길 기다리는 자녀를 위한 대기 공간도 별도로 만들고, 책과 물도 제공했다는 후기에 혀를 내둘렀다. 이 가수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어머니가 느낀 감동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요즘 다른 가수의 팬 사이에서도 이런 공연을 할 수 있음을 알고는 우리도 이렇게 해달라는 투정을 부렸단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소식이 이미 널리 퍼졌기에 앞으로 공연을 준비에서 그냥 간과할 수 없으리라. 속으로 '임영웅 때문에'를 많이 외치지 않을까.
오롯이 나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임영웅을 포함한 소속사와 스태프들은 회의를 통해 지난 공연을 분석하며 팬들이 어떤 점이 불편했는지를 또 어떤 부분을 더 해 줄 수 있는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것 같다.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공연에 들어간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공연 매진은 당연하고 본인에게 돌아갈 수익이 훨씬 컸을 텐데 그걸 포기한 게 범인이 바라보기엔 더욱 대단했다.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 이 마음이 더 모인다면
▲ IMHERO ENCORE CONCERT 비하인드 영상 갈무리.ⓒ 임영웅 유튜브 갈무리
사실 어머니를 공연에 보내고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엄청난 인파가 있다는데 가뜩이나 길눈이 어두운 어머니가 헤매지 않을까, 혹여나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쏟아져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됐다. 걱정은 기우였고, 어머니의 말처럼 오히려 더욱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팬들 역시도 가수 임영웅의 배려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면 비약일까. '우리 가수가 이렇게까지 대우하는데 우리도 잘하자'고 영차영차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내년에 또다시 임영웅 콘서트에 당첨된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이번처럼 간절히 원하면 이뤄지기에 될 수 있다는 마음을 내내 품어 보련다. 혹여나 당첨된다면 나 역시도 어머니를 위한 작은 배려를 하고 싶다. 이번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공연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다가 지친 어머니를 무사히 집까지 모시고 가야겠다.
요즘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들에 피로감 쌓였는데, 임영웅 콘서트 미담 소식은 그 안에서 더욱 빛이 났다.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바라보며 우리 사회에도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
분명 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일이라면 더욱 그랬다. 이 훈훈한 청년이 몸소 보여줬듯이 나보다 다른 사람을 좀 더 생각하고 배려한다면 그 마음이 쌓여 이 험난한 세상에도 살만한 구석을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