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도 때론 나설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있는 곳에 희망도 있다

by 실배

공문을 본 순간, 이전의 나였다면 애써 외면하고 휴지통에 넣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은 열어볼 용기를 주었다. 이름하여 '우수강의안 및 교수법 경진대회'였다. 법무부에서 주관하지만 교육부도 참가 가능하고 대상은 '법무부장관상'이 주어졌다.


등줄기에서 찌릿한 무언가를 느꼈다. 이제 더는 머뭇거리고 피하지 않으리라. '내향인'이라며 스스로를 가두던 틀을 깰 때가 되었다. 공문을 출력해서 소장님 실로 향했다. 한 번 해보겠다는 호기로운 모습에 소장님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해보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몇 가지 주제 중 나는 '배려'를 선택했다. 그 당시 법무부의 트렌드이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 계층을 위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다방면으로 지원할 수 있는 여러 정책이 홍보되는 시점이었다. 나 역시 '배려는 마음의 법'이란 주제로 교육생들에게 그 취지를 설명하고, 우리가 사회에서 해야 하는 역할들에 관한 교육을 진행해 왔다.


내가 직접 해봐야 강의에서도 빛을 발함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물론 다른 누군가의 강의안을 활용할 수 있지만, 내 것이어야만 그 안에서 좋은 사례가 탄생하고 말에도 힘이 실렸다. 아이들에게 이론 교육만 하면 십중 팔고는 잘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전에 교육에서 활용했던 임산부 체험 기구를 활용해 보았다. 대략 6~7kg이 되는 옷을 입고 걷거나 앉아보면서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지를 학생 스스로를 깨닫게 하며 자연스레 우리가 배려해야 하는 대상을 알게 만들었다.


교육 효과는 만점이었다. 처음엔 별 것 아니라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직접 체험하며 하얗게 변했다.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앞으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임산부를 만나면 바로 자리를 비켜 줄 거예요.", "나를 위해 1년을 견뎠을 엄마 생각이 났어요." 등등 아이들의 소감을 들으며 뿌듯했다.

이번에도 주어진 발표시간은 15분이었다. 담은 1분이라도 심사위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임팩트가 있어야만 했다. 이번엔 임산부 체험 활동이 바로 그것이었다. 직접 강의장에서 체험해 보도록 구성해 보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어떤 방법이 좋을지 고민해 보았는데, 아이들이 체험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보여주면 시간 절약도 되고 동일한 효과가 있을 듯했다.


처음에 아이들의 장난 섞인 모습과 체험과정, 그로 인해 변화되는 모습을 3단계로 구성해서 소감까지 담아 만들었다. 화질 좋은 세련된 영상이면 좋겠지만 이럴 땐 오히려 약간 투박함이 오히려 리얼함을 더했다. 15분의 강의안을 완성한 후 또다시 시연을 반복했다.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한 들 강의장에서는 여러 변수가 존재했다. 경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시간'이다. 아무리 좋은 강의를 했다고 해도 시간을 넘기면 감전 요인이었다. 변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 역시 연습 밖에 없었다. 1차 서류심사는 무사히 통과하고 드디어 본 심사 날짜가 잡혔다.


강연 당일 후배와 일찍 길을 나섰다. 소장님은 나머지 직원분들과 강의 시간에 맞추어 오겠다고 했다. 급구 만류를 했지만 기관 대표로 나가는 것임으로 꼭 응원하고 싶다고 하셔서 더는 말릴 수 없었다. 심지어 전날 응원 피켓까지 만들었다. 이렇게까지 지원하는데 대상은 못 받더라도 입상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강의장까지 와서 응원을 해준 고마운 동료들

강의장에 미리 도착해서 동선도 살펴보며 조금이라도 분위기에 익숙해지려 했다. 타고난 내향인이기 때문에 적응에 남들보다 시간이 걸렸다. 이 공간이 안전하고 친숙하게 다가와야만 마음껏 뛰놀 수 있었다. 일부로 더욱 밝은 모습으로 있으려 애썼다. 평소 강의를 하며 만났던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준비과정을 서로 묻기도 했다. 마치 학창 시절 잔뜩 공부를 해놓고는 친구들이 물으면 하나도 안 했다고 너스레를 떨 듯 다들 엄살을 피웠다. 우리는 동료와 경쟁상대 그 사이를 오갔다.


교육부 쪽 강사들은 처음 보았기에 호기심 반 경계심 반이었다. 매일 수업을 하는 교사분들이니 얼마나 대단한 강의를 할지 기대도 되었다.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살짝 위축되기도 했지만 나만의 무기가 있기에 애써 태연한 척했다.


드디어 강연이 시작되었다. 내 순서는 중간 정도쯤 되었다. 강의장 뒤편 좌석에 직원들이 도착해서 피켓을 흔들며 응원해 주는데 이번만큼은 부끄럽기보다 힘이 되었다. 확실히 교육부 강사들은 강의재료 자체가 남달랐다. 우리가 강의, 영상, 체험 등의 수준이 머물렀다면 처음 접한 교구재들과 이를 활용한 미래지향적 수업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느새 경연도 잊은 채 내 수업에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었지 고민하고 있었다. 몇 가지 좋은 팁은 지금 당장에라도 써먹을 수 있었다. 경연장에 오면 늘 배우게 되었다. 시대가 변하고 아이들도 변하는데 기존의 교육방식에 머무르면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센터에서 교육하면서 그 점을 뼈저리게 느꼈고, 계속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적용해 보는 훈련이 필요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후배가 임산부 체험기구를 들고 강의장 앞으로 나아가 심사위원 앞에 놓았다. 그들 눈에 이건 무언지 하는 호기심이 비쳤다. 강의 시작 전 한번 착용하고 움직여 보라고 부탁했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심사위원이 낑낑대는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누렸다.


강의는 내가 원했던 방향으로 흘렀다. 특히 관객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심사위원의 반응도 살필 여유가 생겼다.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우고, 강조할 땐 심사위원 쪽을 바라보며 더욱 힘을 주었다. 드디어 클라이맥스인 임산부 체험 영상을 틀었다.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이 체험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이 3분 남짓의 짧은 영상만으로도 충분했다. 강의를 마치고 힘찬 박수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지금 생각해도 떨리는 순간

그로부터 한 달 뒤 초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는데, 교육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가니 동료 직원들이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결과는 대상이었다. 입선 정도는 생각했는데, 대상이라니. 기쁜 마음에 소식을 가족들에게도 전했다. 며칠 뒤 수상식 열렸다. 커다란 행사장에서 상을 수상하며 그동안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대상을 수상해서 법무부장관상을 받다

학창 시절 발표 불안에 내내 시달리며 위축되다가 운명처럼 강의를 통해 반전을 이루고 꾸준히 성장했던 과정이 이렇게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결국 '용기'를 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 강의 여정의 마지막은 '내부 인권감수성 강사' 활동이었으니 그건 기존의 활동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한줄 요약 : 용기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


이전 08화신에게는 아직 15분의 발표 시간이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