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디에 팔불출 카톡방이 불이 났다. 20대 때 대학원에서 만나 현재 나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 다 된 말 그대로 철딱서니 없는 8명의 중년 아재의 모임 '팔불출'은 코로나 이전까지는 매년 여행을 갔었다. 하지만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지난 3년간 여행은커녕 한번 모이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올해는 여행 한번 꼭 가자고 의기투합했고,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되더니 드디어 부산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카톡방에는 숙소며 먹거리 등등 2박 3일간의 여행 계획이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급기야 MBTI 왕 J인 형님은 세부 일정표까지 작성해서 공유했다.
드디어 완전체 8명이 모이나 싶었는데, 한 명이 여행 전날 뜻하지 않은 회사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불참하게 되었다. 몹시 슬픈 마음을 부여잡고 우리는 갈길을 가기로 했다. 나는 전날 회사 숙직을 서고 다음날 선발대로 다른 세명의 형님들과 함께 KTX에 몸을 실었다. 몸은 몹시 피곤했음에도 흥분된 마음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내가 살짝 투정을 했었다. 아이들도 이제 곧 개학인데 가족여행을 가야지 너무 한 것 아니냐며 눈을 흘겼다. 평소 무얼 하든지 전혀 잔소리가 없는 아내가 이럴 정도면 마음에 담아 놓았다는 건데. 이미 허락을 받았음에도 등줄기가 싸했다. 이럴 땐 무조건 납작 엎드려 잘못했다고 하는 수밖에. 3월 초에 휴일을 껴서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기로 약속하며 간신히 상황을 모면했다.
쉽지 않았던 여행인 만큼 후회 없이 보내리라 다짐했다. 저녁이 다되어 부산에 도착했다. 촌스럽지만 부산역에서 삼각대를 설치하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누가 보면 외국에서 놀러 온 줄 알겠네.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식도락인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부산 차이나타운의 중국집이었다. 부산역 인근이라 천천히 걸어가던 중 낡은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창비 부산점이었는데, 예스러운 건물 안에 보석이 가득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 형님들을 남겨두고 홀로 미지의 세계를 탐방하고 왔다. 기다리는 이들이 아니었으면 한참을 머물렀을 텐데 아쉬웠다.
차이나타운 안에는 러시아 음식점도 꽤 많았다. 어디를 갈지 고민을 하다가 한참을 안으로 들어갔는데, 왠지 맛집으로 느껴지는 곳에 본능적으로 발을 멈췄다. 누군가 그랬다. 맛집에 가려면 어르신 먼저 찾으라고. 한쪽 구석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따라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일단 군만두, 고기튀김, 짬뽕을 시켰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간이 삼삼하니 어찌나 맛나든지. 거기다 고량주까지 더하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한 번 고삐가 풀린 배는 멈출 수 없었다. 누룽지탕에 짜장, 짬뽕 곱빼기를 추가로 시켰다. 입이 호강하니 마음까지 행복했다. 이제 더 넣었다간 배가 터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들 때 젓가락을 놓았다.
택시를 잡아 숙소인 한화리조트를 가던 중 무섭기로 소문난 부산항대교를 지났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마치 청룡열차를 타는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택시기사님이 갑자기 본인의 사상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앞도 보지 않는 모습에 아연실색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상황이었다. 무사히 다리는 건넜지만, 도착지까지 내내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그나마 뒷좌석에 앉은 것을 행운으로 여겨야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후발대로 오는 두 형님을 위해 횟집으로 향했다. 회센터였는데, 1층에서 회를 고른 후 윗 층에 올라가서 먹는 시스템이었다. 배가 부른 관계로 양보다는 질을 외쳤더니 참돔을 추천했다. 그 자리에서 생선 머리를 칼로 내리치더니 빨간 통에 담아 주셨다. 그걸 들고 엘리베이터를 올라가는데 그 모습이 왠지 기괴스럽게 느껴졌다. 배가 불렀지만 어찌 회를 거부하리오. 한 점 떠서 간장에 찍어 입에 넣었는데, 맙소사 이건 조금 과장해서 꿀맛이 따로 없었다. 부산의 대표 소주인 '대선'과 함께 그 맛에 빠져들었다. 드디어 후발대도 도착했고, 횟집에 이어 투다리까지 이어진 대장정의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해장을 위해 대구탕집을 방문했는데, '속 시원한 대구탕'이란 이름답게 양도 푸짐하고, 국물도 시원하니 해장으로 최고였다. 문득 대구탕을 좋아하는 아내 생각에 택배로 3kg을 주문하고 카톡을 보냈더니 여행 중에도 가족 생각한다며 고맙다는 답이 왔다. 앗싸. 잃었던 점수를 조금은 만회했네.
오후 일정은 요트였다. 날이 다소 쌀쌀하기는 했지만 우리만 단독으로 탑승하는 걸 예약했기에 멋진 시간이 되리란 기대를 품었다. 처음엔 우리 예상과 같았다. 출렁이는 푸른 파도 앞에 놓인 멋들어진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연신 찍었다. 음악도 우리 나이대에 맞는 올드팝이 흘러나왔다. 다들 그 감성에 취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추워도 너무 추웠다. 높은 파도에 살짝 멀미도 나고, 차가운 바람이 연신 얼굴을 때리는데 어찌나 괴롭던지. 더구나 나는 모자까지 바람에 날려버려서 속이 상했다. 도착할 무렵에는 모두가 너덜너덜해졌다. 이제 낭만은 한 번으로 족했다.
숙소로 돌아가 지친 몸을 달래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 날은 특별히 스페셜 게스트가 오기로 했다. 우리 모두와 친한 누님인데 어제 한 형님의 연락을 받고는 바로 오후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누님이 숙소에 도착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저녁 장소인 '초원복국'으로 향했다. '우리가 남이가'란 말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곳이었다. 생각보다는 한산했고, 우리는 세트메뉴로 복수육, 복튀김, 복국이 나오는 걸로 시켰다. 복수육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하니 술안주로 최고였다.
왁자지껄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누나는"너네들은 여행 와서 특별히 하는 것도 없으면서 뭐가 그리 즐거워?"라며 물었다. 누나 말이 맞았다. 별 것 하지 않아도 우리끼리 시시껄렁한 농담 하며 사소한 말에 왁자지껄 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나이를 먹고,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도 생기고 다들 그 안에서는 가면을 쓰고 어른인 척 있지만 이곳에서는 우리는 10대의 팔팔한 아이로 돌아갔다. 그 시간들이 큰 기쁨과 위로와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누나도 처음엔 이해를 못 하다가 한참을 같이 보내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치고 펍을 갔는데 2층에 우리만 있는 공간이 조성되었다. 센스 있는 사장님은 90년대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듀스, 마로니에, R.ef, 투투, S.E.S 등등 그 시대를 향유할 수 있는 음악이 나오지 몸을 주체 못 했다. 함께 떼창도 해보고, 서서 몸을 흔들며 분위기에 마음껏 취했다. 그때 큰 형님이 한마디를 했다.
"상담은 한 명을 위한 일이지만, 음악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더 위대한 것 같아."
그말이 와닿았다. 음악은 단숨에 빛났던 그 시절로 돌려보냈다. 그날밤도 끝을 모를행복에 빠져들었다.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드디어 마지막 날이 밝았다. 몹시 몸이 찌뿌둥하고 지끈거리는 두통이 찾아왔다. 나이 생각 못하고 달린 탓이겠지. 해장장소는 3대 운영하는 '해운대 오복 돼지국밥'이었다. 어정쩡한 시간임에도 줄을 서야 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들어갔는데, 맛은 역시 끝내 주었다. 서울에서도 돼지국밥집을 여러 곳 가보았지만 이 맛이 아니었다. 역시 맛집은 간이 삼삼했다. 재료자체가 워낙 좋으니 그럴 수밖에. 해장으로 지친 몸을 달래고 터미널로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은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찾아왔다. 배터리로 빗대면 100% 충전된 느낌이랄까. 이제 곧 퍽퍽한 현실로 돌아가지만 왠지 두렵지 않았다.
'우정은 풍요를 더 빛나게 하고, 풍요를 나누고 공유해 역경을 줄인다.'란 말처럼 앞으로도 서로에게 큰 버팀목이 될 사람들이기에 든든하고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