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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y 25. 2024

"나 보러 올 거지." 이제 곧 퇴직인 선배가 물었다.

선배와의 춘천 자전거 여행

"나 퇴직 전에 자전거 타러 춘천 함 와야지."


전화기 너머로 선배의 목소리는 묻기보단 답이 정해져 있었다. 주저 없이 알겠다고 말했다. 올 6월이면 선배는 이 직장을 떠난다. 우리가 만난 지 15년이란 긴 시간을 뒤로 한채.


금요일 오후, 급하게 일처리를 마무리하고 2시간 조퇴를 내고 청량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ITX가 매진되어 경춘선 열차를 타고 가야 했다. 다행히 텅 빈 열차에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아뿔싸 급하게 나오느라 회사에 책을 두고 왔다. 신 여정에 독서보다 좋은 건 없는데 어 수 없었다. 아쉬움은 OTT 드라마를 보며 달랬다.

남춘천역에 도착해서 선배가 있는 관사를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금요일 퇴근 시간에도 거리는 한산했다. 도착하니 길 건너 선배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마 가득한 주름이 좋은 인상을 더했다.


"배고프지? 춘천 왔으니 닭갈비 먹어야지. 저기 한산한 곳이 있으니 따라오시게."

덕분에 현지인만 아는 조용한 맛집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를 앞에 놓고 시원하게 소맥을 말아 마셨다. 10살도 넘는 나이 차이임에도 선배와 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 사이에 흐르는 동일한 기류를 알아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가가 절친이 되었다.


최근에 선배는 교보문고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소설을 냈다. 나는 7월 말에 출간을 한다. 서로의 글에 관한 이야기로 잠시 먹는 것도 잊었다. 쩌면 직장에서 글에 관한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술이 물인 듯 술술 들어갔다.


"배부르네. 잠시 걷자고."


선배를 따라 땅거미가 진 어두운 천길을 걸었다. 적막 속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안주를 사서 숙소에 들어갔다. 밤늦도록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씻고 자전거 탈 준비를 했다. 선배는 세심하게 엉덩이 패드도 챙겨주었다. 날은 살짝 흐리며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 자전가 타기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천천히 공지천으로 향했다.

1시간여의 라이딩을 마치고 잠시 커피 타임을 가졌다. 자전거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그림 같았다.

"잠시만. 우리가 5년 전 찍었던 인어상이네. 같이 찍자고."

이어지는 길은 참 아름다웠다.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가면 그만이었다. 산, 강, 들판이 있는 이곳은 어디든 힐링이었다.

"여기야. 내가 전에 비박하고 싶었던. 그 앞에 서봐. 물살이 거세니 조심하고."


한눈에 보아도 위태로운 다리 사이에서 잔뜩 졸아서 포즈를 취했다. 이런 곳에서 하룻밤 잘 생각을 했다니 못 말리는 선배다.

장장 4시간 반의 자전거 여행을 마쳤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깨가 뻐근했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분명 퍼졌으리라. 허기가 찾아왔다. 숙소 인근의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끝내주는 맛에 막걸리를 한 잔 했다. 이곳이 바로 천국 같았다. 2차는 커피로 마무리했다.

숙소에서 씻고 챙겨 온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는 정말 아쉬운 발길을 돌릴 때이다. 그래도 선배 퇴직 전 좋은 날에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선배는 굳이 버스 정거장까지 배웅을 했다. 저 멀리 버스가 다가올 때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툭하고 뱉었다.


"가끔 연락할게. 또 보자고. 잘 가고."


그 짧은 말속에 수백 가지 의미가 담겨있기에. 난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꿈같은 춘천에서의 시간을 뒤로 한채 난 차에 몸을 실었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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