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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y 27. 2024

캘리그래피 수업받는 프로악필러

6주간의 캘리그래피 수업으로 악필을 바꾸고 싶은 간절한 바람

나는 글씨를 참 못 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어머니 말로는 아주 어릴 땐 제법 썼는데, 글씨를 자그맣게 쓰라는 그때 당시의 선생님의 말에 엉망이 되었다는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글씨는 살아오면서 커다란 핸디캡이 되었다. 직장에서도 초임 때 선배들은 내 글씨를 보고 예전 같으면 직장 생활 못했다고 농담 반 진담 반하곤 했는데, 손글씨를 많이 쓰던 그땐 정말 그랬을 것 같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글씨를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책을 출간하곤 뜻하지 않게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았다. 순간 당황해서 모면하고 싶지만 거절할 수도 없어서 최대한 천천히 펜을 움직여 보지만 지렁이처럼 굴러가는 글씨에 이내 미안함 마음이 차올랐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글씨를 잘 쓰는 둘째에게 코치도 받아서 연습도 해보았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아빠는 왜 그렇게 글씨를 못 써. 안 되겠어."라며 구박만 잔뜩 받았다."


'그래, 나는 글씨를 못쓰는 사람이야.'라고 인정하며 체념하려는 때, 우연찮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도서관 봉사하는 단체 카톡 방에서 봉사자들 대상으로 캘리그래피 교육 과정이 개설되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신청하라는 공지가 떴다. 총 6주간의 교육이었고, 장소가 도서관이니 봉사 이후에 연속해서 들으면 될 것 같았다.  얼른 신청한다는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첫 수업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일찍 도착하셔서, 함께 교육 준비를 했다. 빔을 설치하고, 교육 자료를 책상에 정리했다. 그리곤 조금 있으니 봉사자들이 도착했다. 평일과 주말, 그리고 시간도 달라 평소에 얼굴 볼 일이 없는데, 이렇게 교육 때라도 이야기 나눌 좋은 기회였다.

선생님은 캘리그래피의 역사에 관한 설명부터 해주셨고, 주변에 '예쁜'글씨를 나누며 행복한 경험을 소개할 땐 나도 모르게 설렜다. 간단한 이론 교육과 전체 교육 일정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글씨 쓰는 연습을 해보았다.

선을  긋고, 동그라미를 만들고, 다양한 형태의 모양도 써보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힘을 빼야 한다는데 나도 모르게 펜을 꽉 쥐었다. 옆에서 선생님은 연신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는데 잘되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따라가 보았다.


마지막으로 한글의 자음, 모음 쓰는 법을 배우고, 따라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쁘게 쓰고픈 욕심과 달리  삐뚤빼뚤 거려서 속상했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는 생각으로 계속 연습을 했다. 어느새 2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휴."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선생님은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반드시 집에서 연습하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집에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비장한 심경으로 펜과 종이를 꺼냈다. 그리곤 천천히 글씨를 써보았다. 물론 여전히 형편없지만 계속 쓰면 나아지리란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첫째와 둘째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곤 한마디를 던졌다.

"아빠. 무슨 초등학교 글씨 같아.", "그무슨 캘리그래피야? 내가 써도 그보단 낫겠다. 쯧쯧"


가슴 한구석에서 뜨거운 불이 차올랐지만,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되새겼다. 그리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했다.


'두고 봐. 내가 수업 끝나고 멋진 글씨로 코를 납작하게 해 줄 테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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