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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y 30. 2024

만약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녹내장 진단을 받고서

얼마 전부터 오른쪽 눈 주위가 간지러웠다. 며칠 지나면 낫겠지 했지만 가려움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안 되겠다 싶어 회사 점심때 인근 안과를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은 단순한 피부염이라고 하면서 간단한 검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러 가지를 물었다.


"최근에 눈이 아픈 적이 있었나요?", "혹시 당뇨가 있어요?" 그러더니 "가족 중에 녹내장 환자가 있나요?"


'녹내장?'. 어머니가 최근에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녹내장 전단계 진단을 받았단 이야기는 들었었다.


"혹시 모르니. 녹내장 검사를 받아봐요. 확실하진 않지만 의사로서 감이 그래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 멍했다. 자세힌 모르지만 최악의 경우 실명까지 된다는 그 무서운 병 아니더냐. 선생님께 가려움 방지 약을 처방받은 후 병원에서 나왔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일단 정확한 검사를 받아야겠단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가 수술한 병원이 좋았단 말이 생각나서 전화로 물어보았다. 그리곤 검사 예약을 잡았다.


검사 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에서 조금 일찍 나왔다. 병원은 규모가 상당히 컸다. 접수를 하고, 검사실에서 잠시 대기했다. 조금 있으니 내 이름을 불렀고 부르는 쪽으로 향했다. 검사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시력 검사도 하고, 조그마한 화면 속으로 나오는 원에 집중도 하고, 빛을 쳐다보기도 했다. 자꾸 눈이 아리듯 아파서 깜박이는 바람에 계속 다시 해야 했다. 급기야 내 눈을 잡고 검사기를 들이댔다.

  

사를 마치고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생각보다 젊고, 친절한 분이었다. 화면 가득 내 눈으로 보이는 사진이 겹쳐있었다. 눈알과 그 주변이 벌겋게 보여 마치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기생수'가 떠올랐다.


"여기 아래가 세포거든요. 한눈에 보아도 왼쪽에 보아도 오른쪽이 이상하죠. 현재 안압도 높고, 녹내장이 진행되었네요."

"앗? 그래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음..... 일단 손상된 세포는 되돌릴 수 없어요. 최대한 진행을 늦추는 방법밖에요. 죽을 때까지 실명을 막는 것이 베스트겠죠. 제가 안압을 낮추는 약을 줄 테니 하루에 두 번 양 눈에 넣으세요."

"괜찮은 거겠죠. 심각한 건 아니겠죠."


그저 선생님은 어깨를 으쓱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약국에 들러 안약을 받아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다. 본사에서 그 작은 액셀 숫자표를 보며 보낸 시간이 악영향을 미쳤을까. 밤마다 불 끄고 OTT 보던 습관 때문일까. 아님 유전이라 견된 일이었을까.


마음이 저 땅끝 어디까지 가라앉았다.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컥했다. 가뜩이나 안 좋은 눈에 바보처럼 부담만 주고 있네. '혹시 좋아하는 사람을 더는 못 본다면? 사랑하는 책도 못 읽고, 글도 못 쓰게 된다면?' 계속 최악이 떠올라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집에 도착하니 아들이 안방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다.


"아들, 아빠 안과 다녀왔는데 녹내장이라네."

"그래? 그거 심각한 것 아냐?"

"괜찮겠지 뭐."

"앞으로 조심해."


아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한 채 거실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몇 자 끄적거렸다. 그때 뒤에서 아들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눈도 안 좋다면서 노트북은 왜 봐. 밝기라도 조정하든지. 러다 큰일 나면 어쩌려고."


감시하듯 바라보는 아들 때문에 노트북을 덮고 냉장고에 가서 얼음을 꺼내 손수건에 넣어 눈찜질을 했다. 간지러움이 한결 나아졌다. 자식 언제 저리커서 아빠 걱정도 할 줄 알고.


이미 일은 일어 낳고 되돌릴 순 없다. 지금부터 관리해서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밖에. 에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나타났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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