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임에도 문경으로 가는 길은 크게 막히지 않았다. 조금 지났을까. 까만색 도로 위에 펼쳐진 초록빛깔 대자연 앞에 절로 "와"라는 탄성이 나왔다. 아내와 딸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가던 중 불쑥 아내가 말을 꺼냈다.
"근데 좀 허전하지 않아?"
"뭐가?"
"이상하네. 평소랑 다를 바 없는데 왜 자꾸 허전하지."
"가만. 음악을 안 틀었네."
"그렇지? 어쩐지 그렇다 했어."
그랬다. 차를 타면 자연스레 아들은 핸드폰으로 차량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본인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서인지 선곡 수준이 남달랐다. 가요뿐 아니라 팝송, J팝에다 제3세계 음악까지 스팩트럼이 상당히 넓었다. 때론 일일 DJ가 되어서 가족들이 원하는 노래도 들려주며 여행길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라디오를 켜보아도, 딸이 선곡을 해보아도 그 맛이 살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침묵 속에 그 먼 길을 달렸다. 역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녀석의 존재가 이렇게나 컸다니.
문경에 도착하니 장모님과 또순이가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이번 여행은 작년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셔서 홀로 되신 장모님을 모시고 울진에 있는 덕구온천호텔을 다녀오기로 계획했다. 장모님도 아들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쉬워했지만, 그보다도 뒤에서 반갑다고 짖어대는 또순이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였다. 그 이유는 올 때마다 산책을 시켜주는 아들이 보이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장모님이 준비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밖에서 나가자고 낑낑대는 또순이에게로 갔다. 날은 여전히 더웠지만 또순이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할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 목줄을 갈아 끼우고 드넓은산길을 뛰어다녔을 텐데. 현실은 나와 아내가 번갈아 줄을 잡았다. 10대의 쌩쌩한 젊음이 아닌 중년의 심약한 걸음이라 어째 또순이가 우리를 끌고 다니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문경에서 하루 묶고, 오후에 울진으로 향했다. 3시간여를 달린 끝에 도착했더니 저녁이 다 되었다. 이미 끝났을 줄 알았던 모노레일이 다행히 운행 중이라 타고 한 바퀴를 돈 후 인근 바닷가에 발을 담그며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불쑥 아들 생각이 났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바닷가를 참 좋아했다. 특히 바닷가에 갈 때면 나에게 씨름을 도전하곤 했었다. 둘이서 해변에서 몸싸움을 많이 하곤 했었는데. 출렁이는 물결에 괜히 혼자 센티해졌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연락을 해보았더니 무심한 말투로 학원 다녀와서 침대에서 게임하며 쉬는 중이란다. 바다를 좋아했던 추억을 꺼냈더니 기억 안 난다며 바쁘다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무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숙소에 돌아와 우리는 모두 기진맥진했다. 일정이 내내 쉴 틈 없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호텔방은 넓고 쾌적했다. 무엇보다 온천풀이 구비되어 있었다. 장모님과 아내와 딸이 먼저 탕 목욕을 시작했다. 나는 거실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 TV 시청을 했다. 안에서는 "호호"하는 웃음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뭐가 그리 즐거울까.
한 시간 여가 지난 후 내 차례가 돌아왔다. 탕은 넓었고, 쉴 새 없이 온천수가 흘러나왔다. 장시간의 운전이 가져온 피로가 사라지며 노곤했다. 국내유일의자연용출온천이라는데 몸이 순식간에 미끌해지며 불기 시작했다. 검지, 중지, 약지로 가슴팍을 문질렀더니 지우개똥처럼 때가 쉴 새 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매일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샤워를 했건만 이것이 진정 온천수의 힘이란 말인가. 탕에서 나와 혹시 몰라서 준비해 온 때밀이 수건을 꺼내 밀기 시작했다. 몸의 불순물이 빠져나가는 쾌감 속에 빠져 들었다.
앞을 다 밀고 이제 등허리가 남았다. 손을 최대한 뒤로 빼며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있었다. 미지의 그곳은 나에게 밀어달라고 계속 신호를 보냈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이럴 때 아들이 있었다면.... 아들은 아내를 닮아 손바닥 힘이 유독 강했다. 그래서 때를 밀면 그리 시원할 수 없었다. 꼼꼼한 성격은 빈 틈 하나 주지 않았다. 그의 손길이 간절했다.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부자간의 깊은 정을 쌓을 수 있었을 텐데. 애꿎은 때수건을 탓하며 다시 심연의 탕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체크인할 때 안내 데스크 직원이 호텔 뒤편으로 가면 산이 있는데 둘레길이 잘 되어 있고, 중간에 계곡이 있어 발을 담글 수 있다고 했다. 날이 덥기에 아침 일찍 가보라는 조언을 했다. 갈 기회를 살피다가 마지막 날 새벽에 일어나 홀로 산에 올랐다. 아들을 제외하곤 다들 산을 썩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둘레길 수준이라 오르기 수월했고, 중간중간 외국의 유명한 다리를 본떠서 만든 곳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중간쯤 올랐을까. 호텔 직원 말처럼 발을 담글 수 있는 계곡이 있었다. 신발을 벗고 시원한 물에 발을 밀어 넣었다. 무언가 말로 표현 못할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함께라서 좋을 때와 오롯이 혼자라서 행복한 순간이 있다.
힐링하며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중 이번 여행에서 빠진 아들을 떠올렸다. 어릴 때 참 귀엽고 활발했던 아이가 사춘기를 맞이해서 자기 안으로만 파고드는 모습이 못마땅해 잔소리하다 갈등이 불거지고 결국 여러 번의 폭발을 겪었던 후회되는 그때를 말이다. 정신 차리고 다시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멀어졌던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는 과정에서 아이는 불쑥 커버렸다. 이번 여행을 안 가겠다고 했을 때 많이 섭섭하고 서운했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아이가 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행 곳곳에서 아들의 빈자리가 느껴진 것 또한 사실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장모님을 문경에 모셔드리고 다시 서울로 왔다. 집에 도착하니 아들은 학원에 가고 없었다. 여행 짐을 정리하고, 집청소를 마칠 때쯤 아들이 돌아왔다. 나와 아내와 딸은 한걸음에 달려가 아들을 꼭 안아 주었다. '이 사람들 왜 이래?' 하는 시크한 표정으로 맞이했지만 그 안에 반가움마저 감출 순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살이 많이 빠졌다. 알고 보니 하루에 한 끼 밖에 먹지 않았단다. 그렇게 챙겨 먹으라고는 했건만. 속상한 마음에 다음부터는 꼭 같이 가자고 했더니 끝내 답을 하지 않는다. 하긴 이젠 강요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아들 없이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보냈다. 아마 내년부터 한동안은 계속 이러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우리대로 빈자리를 채우며 즐겁고 보낼 테고, 아들 역시 혼자만의 휴가를 즐기며 충전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러다 또 함께 하는 날이 분명 올 테지. 그땐 어떤 추억을 써 내려갈까. 인생은 늘 예측불가하기에 한 움큼의 기대를 품어본다.
여행기간 아들의 유일한 연락 ㅠㅠ
여행 중에 아내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휴가를 떠난 것이 아니라 아들이 진정한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요. 잔소리하는 엄마 아빠 없이 하고 싶은 것 실컷 하며 얼마나 즐겁겠냐고요.
아들에게도 분명 그런 시간이 필요하니 다음번 휴가는 아예 묻지도 않고 빼놓고 가는 편이 나을까 생각하면서도 그러면 영영 같이 못 갈까 두려워 예의상 묻기는 해야겠습니다.
아들의 빈자리는 분명 있었지만 나머지 가족도 좋은 것 실컷 보고 맛있는 음식 원껏 먹으며 나름의 행복을 즐겼습니다.
그런 의미로 이번 휴가는 서로에게 윈윈이 되었습니다. '사춘기 아들 갱년기 아빠는 성숙해지는 중입니다' 후속 편을 써야 하나 심각히 고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