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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어느 할랑한 봉사자의 담언

언젠가 도서관이 가득 차길 바라는 마음으로

by 실배

1년 간의 도서관 자원봉사를 마치고 연말에 송년회 겸 봉사자들이 다 모였다. 회의 겸 1년 간의 활동을 돌아보던 중 봉사 대장님이 새해엔 도서관 운영시간에 변화를 줄 예정이라고 했다. 도서관 휴관일이 기존 토요일에서 월요일로 변경되어 토요일 봉사자가 필요하단다.


마침 일요일 오후 봉사가 다른 사정으로 어려워졌기에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혹여나 있을지 모를 일정들에 선뜻 손을 들지 못했다. 봉사자들에게 봉사 가능 시간을 적어달라는 요청에 머뭇거리고 있던 중 대장님이 다가오셨다.


"실배 선생님 혹시 토요일 봉사 가능하세요? 지난번에 언뜻 일요일 오후가 어렵다고 들었던 것 같아서요."

"아. 넵. 그렇긴 한데 토요일에 혹시 개인 일정들이 생길까 봐 고민되네요. 봉사는 계속하고 싶은데...."

"그렇군요. 토요일 오후에 붙박이로 가능한 봉사자님이 있으니 실배 봉사님을 그 시간에 넣어서 유동적으로 활동하면 어떠실까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죠."


배려해 준 덕분에 봉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토요일에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주로 집에서 빈둥대며 핸드폰이나 뒤적거릴 텐데 그 시간에 의미 있는 일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봉사 끝나고 남아 조용한 공간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봉사 첫날. 아이들 점심을 챙겨주고 여유롭게 길을 나섰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오전 봉사 선생님이 있었다. 반갑게 새해 인사를 건네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이용자들이 좀 있었나요?"

"아니요. 아직 홍보가 안되었는지 한 분도 안 오셨네요."


텅 빈 공간에 홀로 남아 시스템에 접속했다. 10분, 20분, 30분..... 기다려도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오길 바라면서도 이 순간이 주는 고요, 침묵이 깨지지 않길 바라는 모순에 놓였다. 멜론 앱을 켜서 잔잔한 음악도 틀어 놓았다. 보글보글 물을 끓여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괜스레 텅 빈 공간을 걸으며 온기를 심었다.


아마도 지금의 여유는 시한부겠지. 이제 곧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본인보다 큰 책을 들고 종종 대는 아이들, 돋보기를 쓰고 코 끝을 잔뜩 찡그리며 책에 몰두하는 어르신들, 책을 읽는지 깔깔대며 대화하는데 집중하는지 모를 청소년들이 가득한 공간을 꿈꿔 본다.


이제 남은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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