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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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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Dec 11. 2019

이런 곳에 살고 싶어요.

나는 종종 은퇴 후의 삶을 꿈꾼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나중에까지 이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입사 초부터 죽이 잘 맞아 형, 동생처럼 지냈던 선배와 나중에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나란히 짓고 살자는 말을 농담처럼 했었다. 그리고 올해 초 선배에게 문자가 왔는데 그 안에는 그림 같은 주택이 있었다. 꿈을 이뤘다는 선배의 말에 부러움이 가득했었다. 옆에 자리가 있다고 오란데 아내에게 슬쩍 물었다가 면박만 들었다. 나와는 달리 계속 도시에서 살고 싶은 아내를 어떻게 설득할지 지금부터 고민해봐야겠다.

우선 언제든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산이 근처에 있으면 좋겠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닐지라도 정상에 오르면 이마에 살짝 땀이 날 정도의 동산이라도 좋을 것 같다. 집에 있다 생각나면 책 한 권 들고 편한 복장으로 산에 올라 자연 속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것이다. 아. 하나 더. 거실 창문을 열면 바로 산이 보이면 좋겠다. 산이 주는 정기를 매일 받도록 말이다.

길을 걷다 만나는 조그만 개울이 있어도 좋겠다. 개울 근처 아무 바위에 앉아 졸졸거리는 물소리도 듣고 날이 좋으면 슬쩍 차가운 물에 발도 담그며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좀 더 흥을 내려면 맥주 한 캔 정도가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여름에는 그늘에 돗자리 깔고 누워 낮잠도 자고 좋아하는 책도 실컷 읽는 것이다.

소박하지만 정감 있는 동네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파트보단 주택가여야 한다. 그것도 너무 빽빽하지 않고 적당하게 형성된 마을 정도. 안에 여유로움이 가득해서 바삐 살지 않으면서 서로 정을 나누는 그런 곳이다. 친한 이웃도 몇 있어서 가끔 초대해도 부담 없이 식사나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도 나누며 사람 냄새나게 살면 좋겠다.

주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도서관과 독서 모임이다. 생각해보니 도서관이 있으면 자연스레 그 안에 독서 모임이 있을 것 같다.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지. 책은 늘 가까이에 하고 싶다. 비가 많이 와서 멀리 외출하기도 어려울 때는 도서관에 가서 내내 책을 읽으며 머물고 오고 싶다. 진한 커피 한잔에 편한 구석 자리에 앉아 이 책도 읽어보고 저 책도 읽어보는 것이다. 그때 되면 토지 같은 대작을 정독해서 읽어보고 싶다. 쫓기듯 넘기는 것이 아니라 한 단어, 한 문장 꼭꼭 씹어 읽는 것이다. 수시로 책도 빌리고 혹여나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행사가 있으면 열심히 참여하는 인사이더가 것이다. 독서 모임도 필수이다. 혼자 책을 읽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읽은 책을 함께 나누는 시간도 무척 중요하다. 그때는 나이가 지긋할 테니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혹시 모르겠다. 진짜 독서 모임을 운영하는 모임장이 되어있을지도.

내가 주거하는 공간은 최대한 작게 할 예정이다. 그때 되면 아이들도 각자의 삶으로 떠났을 것이고 굳이 둘이 사는 데 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계속하고 싶었던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할 것이다. 대략 20평 남짓이고 거실에는 다용도의 테이블만 있으면 된다. 물론 TV는 두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강릉 여행 갔을 때, 에어 비엠비에서 묵었었는데 가운데 바 형태의 테이블이 있고 양옆으로 각각 방이 있었는데 마음에 들었다. 혹여나 공간이 더 있다면 노트북 하나 놓을 정도의 작은 책상이 있으면 작업 공간으로 안성맞춤일 것 같다.

바라는 공간으로 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아내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조차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마음의 반이 즐거워졌다. 계속 꿈꾸고 바란다면 안될 것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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