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잡은 농구공이 준 행복
하반기 부서이동 후 부서원 모두가 남성으로 구성된 마치 군대 같은 과에 와 있다. 하는 일이 스트레스도 많고 육체적으로 고돼서 그런지 과 분위기는 무척 좋다. 평소에 자주 농담도 하고 무슨 일이 생기며 서로 나서서 도와주는 등 단합도 잘 된다.
무엇보다 다들 운동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난번에는 퇴근 후에 함께 족구를 했는데 한데 어우러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 한 친구가 다음엔 농구를 하자고 했고, 다들 좋다고 했다. 과 구성원이 20대부터 40대까지인데 특히 슬램덩크와 연고전을 겪은 중년들이 격한 환호를 보냈다.
회사 인근에 실내농구 코트를 예약하고, 참가 인원 및 팀구성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드디어 12월 1일 퇴근 후 14명이 모여 농구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얼마나 설레든지. 어릴 때부터 구기종목을 좋아한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농구에 빠져 학창 시절 내내 먼지 가득한 땅바닥에서 친구들과 굴렀다. 대학 때까지 농구를 계속하다가 그 뒤로 할 기회가 없었는데, 직장에 들어와 30대 중반에 다시 농구공을 잡았다.
회사에서 주관하는 시합에도 참가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다가 40대가 되어 다시 끊겼다. 정말 오래간만에 농구를 다시 하게 돼서 설레는 마음과 한편 몸이 움직여줄 가하는 걱정도 되었다.
농구장으로 내려가는 길,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는 옛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농구장 구격이 조금 작아서 4명씩 3팀으로 구성해서 시합을 했다. 처음엔 뛰는 것조차 힘들었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역시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시간이 조금 지나니 몸이 기억했다. 전보다 활동량은 줄었지만 시야가 넓어지고 세포가 그에 따라 움직였다.
시작하자마자 손가락이 다치고, 어깨가 탈골되고, 쥐가 오른 후배들이 있었다. 그만큼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뛰었다. 20대 후배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나도 예전엔 그랬지란 안타까움이 서렸다. 그래도 이렇게 함께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중반 이후부터는 조금씩 실력이 나왔다. 마지막 경기에는 3점 슛도 넣어 후배들의 박수를 받았다. 최종 전적은 4승 1패로 우리 팀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마지막에 도열해서 인사를 나누며 함께했던 치열한 순간을 마무리했다.
뒤풀이는 인근 삼겹살 맛집이었다. 폭탄주가 오가고, 맛나게 고기를 먹으며 지친 몸을 달랬다. 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뒤늦게 온몸 곳곳의 통증을 느꼈다. 필시 몇 주간은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다들 즐거웠는지 다음을 기약했다. 그땐 축구를 하자는데 뛰어도 되나 살짝 걱정은 들지만 뭐 몸이 기억할 테니 무조건 해야지.
역시 몸을 부딪치고 함께 땀을 흘려서인지 한층 가까워졌다. 운동 좋아하는 구성원을 만나 오십을 앞둔 시점에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게 되었다. 당분간은 이 흥분 속에 푹 빠져지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