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마지막 사랑을 고백하는 법

The Last Time

by 이방여백

우리는 대개 '처음'이라는 단어에 열광한다. 첫 만남의 서툴고 풋풋한 공기, 첫 키스의 떨림, 그리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수많은 시작들. 시작이 주는 매혹은 분명 강렬하지만, 삶의 파고를 몇 번 넘겨본 이들은 안다. 정작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화려한 시작이 아니라, 고요하고도 단단한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에서 가장 로맨틱한 선언은 "당신이 내 첫사랑이야"라는 수줍은 고백이 아니라, "당신이 내 마지막 사랑이야"라는 경건한 확신이어야 마땅하다. 에릭 베넷(Eric Benét)의 'The Last Time'은 바로 그 지점, 다시는 없을 종착지에 도착한 한 남자의 긴 유랑을 끝내는 마침표와도 같은 곡이다.


창가에 내려앉는 노을이 거실 깊숙이 그림자를 드리울 때, 혹은 유독 마음이 허기진 새벽에 이 곡을 꺼내 든다. 전작인 'Still With You'가 이미 곁에 있는 사람과의 평온한 동행을 노래한다면, 'The Last Time'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건네는 묵직한 서약에 가깝다. 피아노 선율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고, 에릭 베넷의 보컬은 마치 신 앞에 선 구도자처럼 경건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그는 이 곡에서 자신이 지나온 수많은 방황과 오류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고, 얼마나 엉뚱한 길을 헤매며 마음을 낭비했는지 담담히 고백한다. 그 비어 있는 고백의 행간들이 있기에,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이 얼마나 기적 같은 존재인지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네오 소울(Neo-Soul)이 닿을 수 있는 가장 클래식하고 우아한 형태를 띤다. 화려한 변주나 자극적인 비트 대신 정직한 코드 진행을 선택했고, 보컬은 마치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듯 감정의 층위를 쌓아 올린다. 도입부의 낮은 읊조림은 후반부로 갈수록 벅차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 채 고조된다. 하지만 그 고음조차 단순히 가창력을 뽐내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은 곳에 가둬두었던 진심이 터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분출처럼 느껴진다. 특히 "I know that this is the last time I'll fall in love"라고 내뱉는 대목에서는,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확신이 서려 있어 듣는 이의 마음을 일순간 먹먹하게 만든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방어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에 겹겹이 빗장을 걸고, 적당한 거리에서 상대를 관찰하는 영악함을 배운다. 하지만 'The Last Time'은 그 모든 방어 기제를 단숨에 무력화시킨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누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당신이라는 항구에 닻을 내리고 거친 바다로 다시는 나가지 않겠다는 결연함. 그것은 사랑에 대한 가장 성숙한 태도이자 용기다.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사랑하겠다는 것은, 앞으로 내게 닥칠 모든 슬픔과 기쁨의 이유를 당신 한 사람으로 한정 짓겠다는 거룩한 구속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가 수많은 연인의 결혼식에서 영원한 고전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멜로디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결혼이라는 서약 자체가 본질적으로 'The Last Time'의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내 눈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시력이 나빠졌거나 감각이 무뎌졌다는 뜻이 아니다. 내 영혼의 모든 주파수가 당신이라는 과녁에 명중했다는 뜻이며, 더 이상의 탐색이 무의미할 만큼 당신이라는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존재론적 만족의 표현이다. 에릭 베넷은 그 숭고한 만족감을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따뜻한 목소리로 대변한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다음(Next)'을 찬양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 더 새로운 자극, 더 멋진 누군가가 저 모퉁이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사람조차 소비재처럼 쉽게 갈아치울 수 있다고 속삭이는 시대다. 하지만 이 노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진정한 행복은 '다음'을 찾아 헤매는 여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을 알아보는 밝은 눈에 있다고 말이다. 수많은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온 끝에 마침내 한 사람의 손을 잡고 "여기서 멈추겠다"고 말하는 순간, 영혼의 방랑은 비로소 끝이 나고 삶은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글을 써 내려가며 다시 한번 이 곡을 반복해서 재생한다. 에릭 베넷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마음속에 차오른다. 나는 지금 그 '마지막'의 가치를 아는 사랑을 하고 있는가. 혹은 누군가에게 기꺼이 마지막이 되어줄 만큼 내 마음은 넓고 깊은가. 어쩌면 우리가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이유는, 우리 안에 여전히 소멸하지 않은 순수함이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사랑의 가치가 가벼워져도,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의 마지막이 되고 싶고, 누군가를 나의 마지막으로 삼고 싶어 하는 간절한 욕망을 품고 산다. 에릭 베넷은 그 보편적이고도 고귀한 욕망을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치환하여 건넨다.


브런치를 찾는 독자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의 인생에서 'The Last Time'은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일 수도, 평생을 바치고 싶은 꿈일 수도, 혹은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 마지막 결심일 수도 있다. 만약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이 평소보다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면, 혹은 그 사람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평범한 일상이 세상 그 어떤 모험보다 값지게 다가온다면, 당신은 이미 이 노래가 선사하는 가장 큰 축복 안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사랑은 결국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곁에서 멈춰 서는 일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가고 싶은 곳이 없어서 멈추는 것. 그것이 바로 '마지막 사랑'이 가진 위대한 역설이다. 오늘 밤, 사랑하는 이에게 이 노래를 슬며시 공유해 보길 권한다. 거창한 수식어나 화려한 선물은 필요 없다. 그저 이 노래가 흐르는 동안 서로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인생이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당신의 이름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그 무겁고도 다정한 진심이 에릭 베넷의 목소리를 빌려 상대의 가슴에 닿을 것이다.


음악이 멈추고 난 뒤 찾아오는 고요 속에서도, 당신들의 '마지막'은 오래도록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는 결국, 이 거칠고 외로운 세상 속에서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단 한 사람의 마지막 목격자를 찾기 위해서일지도 모르니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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