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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Maker Mar 26. 2019

다섯, 우리 부부의 한라산 체험기 2(feat.백록담)

뒤돌아가는 것은, 내 사람을 위한 순간이면 충분하다.

초반 3.2km 정도는 평지 수준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길은 빽빽한 숲이 된다. 아직 겨울의 기운은 제주의 한라산에도 기운을 미치고 있어, 나무들의 초록은 조금 더 있어야 기세를 발휘할 모양인가 보다.

아직 남은 겨울의 기운과 함께 한 한라산


입구부터 빽빽한 숲의 느낌을 받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조릿대 때문이다. 나지막한 대나무 종인 이것은 숲 전체 바닥을 모두 뒤덮고 있다. 너무 가득 피어난 턱에 #한라산 주인행세를 하는 듯하다.


화산석이 갖는 묘한 무늬들과 중간중간 보이는 깊은 계곡, 이색적인 나무들과 화창한 햇살 속 새소리가 눈에 익을 때 즈음이면, 시간은 1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초입 부분의 관음사 코스 풍경


그즈음 나타나는 것이 #탐라계곡 목교 앞 내리막 계단이다. 급경사 계단으로 된 내리막길 앞 풍경은 아름답다. 바로 앞에 나타나는 나무다리도 아름답지만, 그 앞의 급경사 오르막 계단은 숨이 턱 막힌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오른다면, 체력관리가 잘 되었다고 생각해도 좋다. 우리 부부도 쉬지 않고 오르긴 했으나, 계단이 끝나자마자 쉬기 시작했다는.

탐라계곡목교계단


쉬고 나면, 좋아질 줄 알았던 체력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탐라계곡 목교 이후부터는 꾸준히 완만한 오르막인데, 참 끈질기게 평탄하게 오르막이라, 이게 어렵지는 않은데 왜 이리 힘들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관음사코스 이다.

다른 산과 다르게 경사가 크지 않은 한라산 코스이다


쉬고 쉬고 또 쉬고, 오래 쓴 핸드폰 같은 체력.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지라, 쉬어도 보충은 부족하다. 사과 하나를 2번에 나눠서 같이 먹은 건, 탐라계곡 목교 앞에서였다. 어찌어찌 탐라계곡 대피소에 도착한 우리는 쉬고 계시는 분들께 물었다. “혹시, 위에 매점이 있을까요?” 참으로 어수룩한 질문이었지만, 절실했기에 물었던 그 질문. 답은 “없을 걸요”였지만, 놀랍고 감사했던 것은, 굴 하나와 오이 하나를 건네주시면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 중년의 부부가 등반을 하시는 중이었고, “우리도 되든 안되든 끝까지 올라가 보려고요!” 하는 말씀과 함께 다시 오르기 시작하셨던 두 분. 준비도 부족하고, 초행인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따스했던 순간이었다.


탐라계곡 대피소부터 #삼각봉대피소 까지는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와이프의 등산화는 뒤꿈치를 공격했고, 나의 허벅지와 무릎은 터졌다가 살아났다가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와이프는 한동안 신발을 벗고 걸었고, 나는 걸음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힘든 와중에도 우리 둘은 함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변덕을 부려댄 내 다리이다. 난 못 가는 줄 알았다. 중간에 돌아올 줄 알았다. 우리 둘 중에 한 명은 반드시 그렇게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기어코 올라가고 있었다. 내 다리는 뒤가 아닌 앞을 향해 있었다. 잠시 내가 처질 때, 와이프가 처질 때, 서로를 향해 기다리기 위해 바라본 뒤를 제외하고는, 내 다리는 절대로 뒤가 아닌 앞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일지라도, 뒤로 돌아가지는 말자. 설마, 뒤를 향하더라도 그것은 내 사람에게 나를 내어 주기 위한 잠깐의 뒷방향이면 충분하다. 그 끝에 찾아오는 감동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다음 회를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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