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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65)

맨유 vs 풀럼

by 이재민

오늘은 맨유와 풀럼의 FA컵 경기가 있다

어제 먹고 남은 닭백숙에 크림소스를 첨가해 든든한 스파게티를 해 먹은 후 경기장으로 출발을 했다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다

요즘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20여분 걸어가서 트램을 타기로 했다

트램을 타러 왔는데 한 어르신이 올드 트래퍼드 가려면 여기서 타면 되냐고 물어본다

영국이 확실히 유색인종이 많아서 그런지 나 같은 동양인에게도 길을 많이 물어보는 것 같다

나도 경기장 간다고 5 정류장만 가면 된다 이야기하니 큰 도움이 되었단다

4시 경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4:30경기였다

생각한 것보다 경기장에 일찍 왔다

꼭대기 자리여서 올라가는데 많이 힘들었다

영국 백인 놈들 중간에 쉬면서 헐떡 거리길래 나도 더 힘든 척을 했다

그들보다 체력이 좋은 게 기분이 좋다

역시 행복은 상대적인 것인가

내 자리는 경기를 보기에 괜찮은 자리였다

지금은 양 옆으로 자리가 비어있지만 아마도 경기가 시작되면 가득 찰 것이다

왜냐하면 예매를 하며 이곳에 빈자리가 별로 없다는 것을 보았다

경기장에서 뭐 잘 안 사 먹는데 시간적 여유가 많기에 사 먹기로 했다

맨유 경기장에서는 특별히 음료 하나, 따뜻한 음식 하나, 과자류 하나를 고르면 세트로 파는 것이 있었다

다른 경기장들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이라 생각이 되어 먹어보기로 했다

콜라와 스테이크파이 그리고 감자칩을 골랐다

스테이크파이는 상당히 담백한 음식이었다

곁들여 먹을 소스 같은 게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지만 그래도 따뜻하니 먹을만했다

시간이 되어 몸 푸는 시간이 되었다

팀마다 몸 푸는 방식이 다르다

훈련마다 감독의 철학이 녹여져 있는 것 같다

이윽고 경기는 시작이 되었다

풀럼은 예전에 열심히 축구 볼 때 박지성 선수한테 많이 당해주었던 팀이다

맨유에게 있어서 풀럼에게 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리그에서 풀럼이 더 잘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리그에서 풀럼은 9위고 맨유는 14위다

지피티에게 풀럼이 강팀이었네?라고 물어보니 부정한다

오늘 경기 누가 더 유리해?라고 물어보니 맨유가 유리하단다

아무래도 지피티는 맨빠인 모양이다

역시나 경기는 맨유에게 쉽지 않았다

경기가 굉장히 팽팽했다

전반전은 별 소득 없이 끝나는 듯했으나

끝나기 바로 직전 풀럼이 코너킥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이때부터 맨유 팬들에게 불 멘 소리가 많이 나왔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71분이 되어서야 동점골이 나왔다

겨우 골은 넣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력이었다

팬들도 감독의 전술이 맘에 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보통 홈팀의 골키퍼는 야유의 대상이 되는 법이 별로 없는데 조금만 시간을 끌거나 그러면 야유가 나왔다

내가 봤을 땐 감독에 대한 비판이 아닐까 싶었다

열심히 빌드업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결과물들이 신통치가 않았다

보는 내내 동점골을 넣었어도 맨유가 져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력이었다

결국 정규시간에는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나는 풀럼 원정을 가서 승부를 가리는 줄 알았는데 연장을 간단다

축구를 더 보다니 오히려 좋잖아?

연장전은 좀 안쓰럽기도 했다

하나 둘 체력이 떨어지고 다리에 쥐가 나는 선수들도 많이 나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좋은 순간들도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승부차기로 향했다

첫 주자는 맨유의 브루노 페르난데스였다

모든 팬들이 브루노를 연호하는데 내가 다 긴장이 되었다

내가 선수였다면 긴장감에 헛구역질을 했을 것 같다

다행히 브루노 선수는 골을 넣었다

하지만 린델뢰프 선수와 지르크제이 선수가 실축을 하는 바람에 결국 맨유가 패배하게 되었다

실축을 한 선수와 순식간에 고요해진 경기장은 나를 숙연하게 하였다

그에 반해 풀럼 원정팀은 난리가 났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 같다

그래도 맨유의 팬들은 연장까지 최선을 다해 뛰어준 선수들을 위해 박수를 쳐주었다

원하는 결과는 가져다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한 것에 박수를 쳐주는 모습에서 성숙함을 느꼈다

오늘은 승부차기에 실축한 선수들이 안쓰러운 밤이다

2025.3.2

부디 마음 잘 추스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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