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는 나
여섯 번째 글: 소심 vs 신경 쓰기
한국인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눈치를 보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하며, 회사에서 눈치를 보며 퇴근 시간을 맞춰보거나 상사의 눈치를 보고, 아이들과 와이프의 눈치를 보며 핸드폰을 사용한다.
이런 생활 속 눈치는 가끔 나를 가엽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일상이며 내가 가진 습관일 것이다.
요즘은 회사 내에서의 눈치가 이전과는 좀 다르다.
현 근무하는 회사가 글로벌하기에 각양각색의 국적을 가진 팀원들이 있으며, 우리 팀엔 여성직원이 거의 50%, 나이도 남녀 20, 30, 40, 50대로 다양하다. 총국적수는 아마 11개국 정도이다.
이런 다양함 속에 어린 여성 직원들과의 대화는 정말 조심스럽다. 다양한 이유로 민감한 부분들이 많다. 난 리스펙 한다고 한 거이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다르거나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요즘은 젊은 친구들한테 눈치를 본다.
여기 문화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근히 필요로 하며, (다른 이들도 한다) 나의 눈치 습관(눈치를 보는 문화)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었다.
다양함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에 대해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태도, 그게 없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사람을 대함에 어려움이 더 많았을 것이다.
나는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이 충분한가? 아님, 다른 이가 인지하는가? 그건 모르겠다.
누가 알아주는가?
과연 그들은 노력하는가?
이렇게 신경을 쓰다 보면 나는 점점 각양각색의 것들에 소심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인지하는 순간 행동에 망설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전에는 그냥 행동(언행 포함) 했을 것이다.
반면에 익숙한 곳, 또는 편한 곳에서의 나는 조심하지 못함에 뒤늦게 후회하거나 미안해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집에서 행동 또는 언행 속에 "왜, 난 이걸 신경 쓰지 않은 것일까?"
싸우고 뒤늦게 후회함에, 나는 점점 작아진다.
어릴 적 아버지의 어깨가 왜 점점 작아져 갔는지 이해가 된다. 단지 체중이 줄어서가 아닐 것이다.
집에서
업무에서
사회에서
점점 작아지던 우리 아버지들... 난 점점 그 입장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야 이해되는...
이 또한 뒤늦은 후회이다. (약간 감상적이었네;;)
이렇게 "눈치"는 점점 단계별 진화를 만들어 간다.
(Branch of evolution theory)
인지하고, 신경 쓰고, 소심해지기도 한다.
현실에 질문을 하기도 하며, 바른 길을 찾으려고 한다.
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렇게 나는 눈치를 보면 혼돈 속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