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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또치 May 05. 2021

갑사 템플스테이 2박 3일을 보냈다, 나는 달라졌을까?

단 한 문장만을 가지고 하산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

5월3일 갑사의 풍경.


충남 계룡산의 갑사. 삼국시대 지어진 2000년 역사의 절로, 불자가 아니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적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름부터 甲자를 쓸 정도이니, 말 다했다. 이 곳은 전국 템플스테이 중에서 유일하게 폐관수련을 진행하는 절로도 알려져 있다. 5월 3~5일 갑사 무문관(無門關)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문이 없는 관이라는 뜻으로, 밖에서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그고 3~15일간 수행에 매진하는 코스다. 고민이 깊은 탓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였다.


3일 오후 2시30분. 무문관에 입소하기 전 스님과 면담을 가졌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무문관은 수행하는 자들만 오는 곳인데…" 다소 당황하는 말투에 나 역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유명하다길래…" 고민의 깊이가 얕은 것은 아니었으나, 잘못 온게 아닐까? 이게 갑사에 들어선 뒤 한 두 번째 생각이었다. (첫 번째 생각은 절 참 예쁘네) 갑사 무문관은 불자들이 수행을 위해 오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던 것을 그제야 알았다. "어쨌든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이 말을 남긴 채 스님은 나를 무문관으로 안내했다. 집무소에서 무문관으로 오르는 길에서 봄 햇살을 맞은 절의 전경이 보였다. 초파일을 일주일 앞두고 형형색색 연등이 절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오후 3시.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자, 4평 남짓한 방에서 오롯이 혼자가 됐다. 건넌방에 있는 화장실을 제외하면 발을 내디뎌 갈 곳이 없었다. 잘 닦지 않아 먼지가 가득했던 창틀로 햇빛이 은은하게 비쳤다.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샤워를 마치자 당장 할 게 없었다.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래 이러려고 온 곳이지. 나름 불자 흉내를 내봤으나 수행도, 명상도 초짜였던 터라 잡생각이 밀려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파도가 바람의 일이 아니며, 바위가 물살을 막을 수 없듯 자연스럽게 잡념이 몰려들었다. 처음엔 이를 막아보고자 했지만 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노트에 휘갈겨 적었다. 하루에도 몇십 번씩 생각의 갈래가 빗발쳤다. 오후 4시. "거사님 과일 나왔어요" "네"라는 말을 제외하고, 누구와도 소통할 길이 없었다. 무문관에선 나를 거사(居士)라고 불렀다. 국어사전에서는 <1. 숨어 살며 벼슬을 하지 않는 선비 2.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놀고 지내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3.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로 거사를 정의했다. 3번은 아직 아니니 2번이 나를 칭하는 거사의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내 고민에 조언을 해줄 네 권의 책을 들고갔다. 책과 노트를 펴놓고, 책을 읽다 지금의 내 상황에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면 노트에 상념을 적어내려 갔다. 읽는 일도 적는 일도 지루해질 때면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을 반복하니 하루가 다 갔다. 산속의 밤은 이른 시간부터 어두워졌다. 도심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새까만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창이 작아 별은 보이지 않았다. 밤새 이름 모를 새가 홀로 우는 소리만이 작은 방을 메웠다.


둘째 날 오전 7시. 배식구에 식사를 넣어두는 소리에 잠을 깼다. 할 말을 적은 쪽지를 배식구에 넣어 열어두는 것으로 외부와 소통을 한다고 했다. "심장병은 없지요?" 문을 잠그기 직전, 스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이곳에선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누를 수 있는 비상벨 따윈 없었다. 스마트폰 역시 낸 터라 외부와 아무런 연락도 주고받을 수 없는 고독의 순간이었다. 오전 7시(공양)와 오후 4시(과일)에 사동(使童)이 오가는 일 말고는 배식구를 열어볼 새도 없는 듯했다.


하루 한 끼 제공되는 공양(이 역시 입소 직전 알았다. 왜 공지를 안 해두는 거지?). 최대한 아껴먹기 위해 11시까지 기다리고자 했다. 허기가 몰려왔고 생각은 더 날카로워졌다. 허기 역시 수행의 일부인 것일까. 공력이 약한 나는 10시30분이 되자 참지 못하고 도시락을 열었다. 슴슴한 산채 나물 등을 메뉴로 떠올렸지만, 일반 가정식과 비슷했다. 흰밥, 순두부찌개, 볶음 김치, 약간의 버섯, 오이소박이, 나물무침. 허기를 달래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많이 씹었다. 밥만 입에 넣었는데도 단 맛과 찰기가 확 올라왔다. 나물무침은 쓰고 짜서 국에 넣어 흔든 뒤 오래 씹었다. 식사는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도시락 통까지 씻자 40분 만에 공양이 종료됐다.


다시 자리에 앉아 책을 폈다. 군 시절보다 시간은 느리고 천천히 흘러갔다. 이게 상대성이론? 중력에 따라 시간이 휜다는 말은 행성에 국한된 말이 아니라, 마음의 무게에도 관련된 일이었나. 역시 아인슈타인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비해 고민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갑사를 내려오면 어느 쪽이든 선택하려 했건만. 수행 절반이 지나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마저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면 무엇도 안 되겠다 싶어 쪽지를 적어 남겼다. '고민이 종결에 이르렀으니, 수행을 하루 일찍 종료하고자 합니다. 수요일 7시에 개문 부탁드립니다' 거짓말이었다.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있는다고 해서 더 달라질리는 없을 것 같았다. 다시 남은 책에 눈을 돌렸다. 일본의 유명한 승려가 쓴 책이다. 반야심경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해 적혀있다. 책 제목은 <신경 쓰지 않는 연습>. 외부 자극이 없는 스님이라 가능한 일 아닌가. 하지만 이런 사람이 저런 글을 써줘야 어설프게나마 따라 할 수 있는 걸까. 역시 잡생각이 가득한 독서였다.


자연체. 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유도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공격과 방어에 가장 적합한 자세다. 이 말이 일반화돼 무아의 경지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고 한다. <일, 연애, 나아가 인생 그 자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최고의 방법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지 않고, 힘쓰지 않고, 선입관을 가지지 않는 자연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가올 것이 언제 다가올지 몰라 잔뜩 긴장을 하며 온 몸에 힘을 넣고 있으면 쉽게 지치게 된다.> 처음 이 구절을 봤을 땐,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역시나 이런 종류의 책은 평소에 볼 땐 '한가한 말'로 치부하기 쉽다.


자연체라는 말이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은 역자의 말을 볼 때였다. <아무리 긴장을 해도 예상대로 일이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변한다. 아무리 긴장을 하고 있어도 예상을 초월한 조건이 발생할 경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인데, 굳이 긴장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나는 왜 처음에 이 제목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그건 나 역시 자연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연체가 다시 떠오른 것은 잠자리에 누웠을 때다. 고민을 종결하지 못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불을 끄고 고개를 파묻었을 때. 문득 무서워졌다. 기껏 흩날리는 '고민의 먼지' 하나 제대로 가라앉히지 못하는 주제구나. 한참 동안 창밖으로 들리는 새소리, 빗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나부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고 나니 나도 모르게, 후회가 몰려오겠다는 생각이 선명하게 들었다. 이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나는 그때의 감정을 참지 못한 것을 후회하겠구나. 뼈 아프게(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진 않지만 강도의 문제는 아님) 그리워하겠구나.


그러면서 나를 짓눌렀던 그동안의 불안감, 죄책감, 압박감, 평가에 대한 과민함이 떠올랐다. 이것은 모두 마음의 문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정받음에 대한 목마름이 더 커지는 것 아닐까 지레 겁먹은 것이다. 한 달 동안 나는 무엇이 두려웠는가. 식욕이 없고, 가슴 속엔 돌덩이가 앉은 듯했을까. 머리가 무겁고, 술을 마시면 왜 한숨이 흘러나왔는가. 퇴사를 생각하니 왜 웃음이 나왔던가. 도망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이라고 위안했던 걸까. 그동안 외부의 평가로 인해 자존감을 채웠구나. 내면에서 나온 행복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 때문에 자랐었고 그게 없어질까 두려웠던 거다.


다음날 7시. 오전 공양을 끝내고, 도시락 통을 씻고,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갑사를 나와 계룡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 전날 비가 많이 내려 휴일이었음에도 사람은 없었다. 마스크를 벗고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천천히 산길을 걸었다. 고민이 종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 무게는 한층 덜어냈다. 2박 3일 동안 두 가지를 알았으니 나름 성공이다. 하나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은 절까지 들어가서 싸매고 있다고 풀리는게 아니라는 것.


또 하나는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 '일체유심조'라는 한 문장. 평소엔 클리셰로 인식돼, '2박3일 갔는데 고작 그거?'라고 인식될 정도의 단순함. 이 단순함의 진의가 내겐 강력하게 박혔다.


두 가지를 교훈으로 들고 나는 하산했다. 벗들에게 하산 소식을 알리고 깨달음에 대해 말했더니 그들은 '원효대사냐' '일주일가겠네' '이틀 간다 보장'이라고 조롱했다. '속세인들은 역시 어리석구나' 떠올리려다...아! 이것도 나의 마음 문제일까 싶었다.


현실을 살면서도 이 마음을 계속 적용할 수 있을까. 다치지 않는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폐관수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내일, 다시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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