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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환 Jan 01. 2017

사상 1

<낯선 여행자의 시간 | 개정판> 연재 #28 

사상이 잉태되는 사유의 순간,
인간 존재의 자유의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신의 절대의지와 권능은 멈춘다.
이것은 절대 존재인 신의 유일한 자기 한계이다






사상은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사상의 입에 칼을 물리고 숨통을 얽어매어도 그것의 혼은 더욱 자유롭게 깊고 낮은 목소리로 죽은 혼백들조차 깨어나도록 외칠 수 있다. 사상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요동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상은 인간 존재 내면의 무한한 자유의지의 공간에서 탄생한다. 사상은 유일하게 신의 창조에서 벗어난 인간이 창조한 인간의 것이다. 사상이 잉태되는 사유의 순간, 인간 존재의 자유의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신의 절대의지와 권능은 멈춘다. 이것은 절대 존재인 신의 유일한 자기 한계이다. 


인간의 존재 진실은 피조물로서 인간이라는 상대적 존재를 위한 신의 창조 진리이며 인간 존재의 자유의지는 창조주에 의한 신과 인간을 위한 인간의 진리이다.



현실은 인간 존재의 인식을 통해 사유를 도발한다. 인간의 의식 속에는 인간의 모든 관념이 혼재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관념의 세계는 태초의 혼돈과 같다. 그러나 인간 존재 관념의 혼돈은 인식되었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어떠한 목적과 특정한 동기에 의해 유발된 거짓과 약간의 진실이 욕망을 정점으로 뒤섞인 현실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성이란 인간 존재 관념의 내면에서 혼돈의 심지로부터 타오르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는 논리를 관철할 수 있다면 인간의 이성은 원래 신성의 영역에 있던 것이었을 것이다—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빛을 따라 눈을 뜨고 진실 혹은 진리를 보고자 하는 주체적 자아의 자유의지 능력만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동력이 될 수 있다.


칠흑 같은 관념의 어둠은 인식의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이 감각으로 인해 사유의 세계는 더욱 밝아지게 된다.


어떤 악덕의 관념이라 할지라도 논리의 정제를 거치게 되면 본질적 목적으로서 궁극적인 결론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합리적인 과정의 재료—이것은 본질적 목적 달성을 위한 소모 가치로 활용되어질 때 매우 유용하다. 이것은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맹목 혹은 편협하게 설정된 이해 관계의 목적을 가지고서는 사상의 본질로 향하는 직관이라는 통로에 이를 수가 없다. 어떠한 오염된 의도, 의지는 스스로 지성에 의한 직관을 거부하려는 인식 거부의 의지로 인해 이 지성의 빛에 이르지 못하고, 직관에 닿을 수 있는 그 빛을 보지 못하는 무능으로 인해 창조적 사상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의 번민이 깃든 사유를 통해 탄생한 사상에 의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문명은 그 자체로 이기적 편의성만 추구하는 야만이 될 수밖에 없다. 편의와 이해에만 가치를 두게 된 문명은 맹목적으로 생산 목적 달성을 위해서만 팽창하고자 할 뿐이다.


사상은 인간 존재의 인식을 위한, 인간 존재의 인식에 의한, 인간 존재 인식의 신성이다.



존재자 모두는 각자의 인생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생명이 소멸하고 있다는 자각이 번민이라는 수고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위안을 선사한다. 또한 동시에 이해하기 힘든 쾌감이 사유의 수고에 은밀하게 수반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삶의 가장 냉혹한 진실은 죽음이다. 모든 존재자는 이 진리의 현실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인간 존재의 근원적 한계가 관념 속으로 번민과 함께 뛰어들어 탄생시키는 사상이 존재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죽음이란 무용, 무의미한 것이 아닌 언젠가는 인간 존재가 받아들여야 할 또 다른 세계를 향한 해방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상적, 신앙적 의미를 찾게 하고 고통 역시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진실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음 자체는 죽음일 뿐이지만 사상은 죽음이라는 것에서부터 삶을 바라보게 하고 죽음 자체의 무용에서 삶 자체의 살아감에 시선을 두게 한다. 인간의 존재 형태는 살아감을 통해서 갖추어지지만 존재자의 삶의 의미는 죽음으로부터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죽음이란 그 자체로 인가 존재에게 두려움이며 염세적인 대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염세적인 대상이라 하여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이러한 진실이 희망적인 것인지 절망적인 것인지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은 살아가는 존재자 각자의 몫일 것이다.


참된 사상이란 이러한 냉혹한 진리의 현실 앞에서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찾을 수 있는가 하는 판단의 중요한 지표가 되도록 만들어 준다. 그 무엇보다 참된 사상이란 학문 안에 직업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 각자의 생각과 고민이라는 사유를 통해 탄생하는, 각자의 삶을 위한 본질적 의미 이상의 그것이다. 대부분 학문으로서의 사상들은 나의 삶으로부터는 너무 멀리 떨어진 머나먼 허영이며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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