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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환 Jan 01. 2017

낯선 여행자의 시간 속으로

<작가의 생각 | 노트> 

가을이 깊어가는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가 마을 둔옥지는 짙은 안개로 아침을 맞았고 하얀 입자들은 춤을 추듯 날아다녔다. 이 신비의 세계는 무척이나 짧은 시간 열렸다가 닫혀버렸다. 늦잠을 자면 만날 수 없는 이 세계 속의 새로운 세계다. 둑방길 너머에 있는 비행장의 비행기들은 하늘을 날지 못하고 제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의 사유는 더욱 맹렬하게 세계의 모든 곳을 향해 탐닉하고자 의욕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사상을 탐닉하는 사람의 길이란 이렇게 안개 속을 거니는 것과 같다. 사유를 위한 인식에서 2인칭의 <그대>란 결국 <나 자신>이라는 1인칭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 나는 겨우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 첫걸음은 시간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가는 것이었다. 그 중 머리속에 남아 있는 글귀가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신앙과 이성>에서 언급되는 말이었다.



사상의 진리들은 직업적 철학자들의
때로는 일시적인 가르침들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남녀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철학자들이고,
자신들의 삶을 이끌고 갈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신앙과 회칙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아주 오래 된 일이다. 나는 유난스럽게 몽상과 번민과 생각이 많았다. 나는 그 보이지 않는 몸부림을 막연한 어떤 대상으로서가 아닌 구체적인 나의 삶의 어떤 것으로 만들어 보고자 했었다. 회칙 <신앙과 이성>은 홀로 서울 생활을 전전하던 1998년 어느 날부터 나로 하여금 다시 책을 읽게 했고 사색을 하게 했으며 메모지며, 책 모퉁이 빈 칸에 글을 쓰도록 했다. 그것이 막연하고 낯선 나 자신의 내면의 사유를 향한 여정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2013년 12월의 마지막 날, 나는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견딜 재간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모두 피폐해져 있었다. 불안증세가 재발했던 것이다. 나는 강박 장애라는 정신 질환을 앓았고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 이전까지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던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하나의 일을 마치면 곧 바로 다른 일을 하고 하루에 두 개 혹은 세 개의 일에 몸을 굴렸고 그리고 틈 나는대로 읽었고 글을 썼다. 휴식과 수면이 부족했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었다.


내게 부족했던 것은 이성도 그것이 창조한 사상도 아닌 바로 밥과 잠과 휴식이었던 것이다. 여정은 가혹했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 많은 것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체험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고 밝혀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험난하고 잔인했던 그 여정을 통해 나 자신은 여전히 가련한 한 마리의 짐승일 뿐이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라하고 비참한 자신의 발견 뿐이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모든 시간이 낯설었고, 사람들도 그러했다. 그들을 마주하고 숨쉬는 세계 또한 낯설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를 나는 아찔하게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용케도 잘 버텼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무너진 자신을 부여잡을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2014년을 맞이함과 동시에 다시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닐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불안의 두려움과 재발한 강박증이 심각한 상태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치료와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동시에 20여년 가까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조각 글들을 한 곳에 모으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메모와 노트를 통해 만나는 과거 나의 생각들에 깃든 영감들을 마주하며 나는 조금씩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낯선 여정>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2014년, 내게는 또 다른 상실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길을 걸었다. <낯선 여행자의 시간> 속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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